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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탈출 제주 여행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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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북새통 속에, 얼마전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가까운 대학 후배가 놀러 오지 않겠느냐 하기에, 그저께 아침에 일으나면서 불쑥 마음을 내켜 김포공항으로 내달았다. 의외로 비행기 안 좌석은 마스크로 무장한 승객이 거의 차지하였다.

공항에서 후배가 알려준 R 호텔로 가는 리무진셔틀버스에 올랐다. 버스앞 안내 목적지 표지가 F 호텔로 되어있기에 차에 오르면서 R 호텔로 가느냐고 물었고, 기사는 첫 스톱에서 내려라고 알려주었다. 승객은 달랑 나뿐이었다. R 호텔이 제주 서쪽 협재 바닷가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후배가 알려준 주차장에서 이 버스가 출발시간 10분 전에 도착하여 대기하였고, 버스 측면에 R Hotel의 광고가 있었기에 그리고 그 주위에 다른 버스가 없었기에, 당연히 R Hotel 을 중간에 들리는 것으로 알았었다. 그래서 버스가 거의 한 시간을 섬의 중부지역을 달리는 동안 기사와 얘기도 주고받으며 왜 오랫동안 가야 하는지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버스가 어느 호텔 앞에 서자 가벼운 마음으로 내렸다. 그런데 보니 이상했다. 호텔 이름이 F Hotel 이 아닌가. 리셉션에 확인했더니 여긴 성산포 가까운 곳이라지 않는가.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R Hotel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F Hotel 은 섬의 정반대 쪽이라지 않는가. 그래서 어떡하냐 했더니, 기다리고 있으라 하곤, 한 시간을 달려 F Hotel로 와서 나를 데려가 주었다. 후배에게 대단히 미안했다. 도대체 도깨비에 홀린 듯 왜 잘못된 방향을 알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경우 가는 곳의 위치를 미리 인터넥 지도에서 검색하는 게 나의 버릇인데, 이번은 일찍 나서느라 깜빡했던 것이다.

그러나, 덕택에 제주도의 중부지역을 횡단하는 여행을 어쩔 수 없이 즐긴 샘이 되었다.

미리 와 있던 또 한 명의 후배와 함께 협재 바닷가에 있는 횟집에서 여러 화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눈 후, 아파트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놀란 것은 집 주인인 이 후배는 기독교 목사가 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성경의 내용에, 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통달하고 있었다. 집 주인 후배에겐 내가 번역한 "더 유란시아 북(1.2부)" 책을 선물하였고, 두 사람에게 내가 유란시아 책을 읽게 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였다. 종교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저 자기의 필요와 때가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책에 대하여 강조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였다.

( 숙소 테라스에서 바라보이는 비양도)


협재 포구에 뜬 슈퍼 문(Super moon).


아침에 그들 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져 있기에, 그들 둘은 낮에 골프 라운딩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기에, 전날 집주인 후배가 나에게 추천해 준 비양도행 배를 타러 간다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T-map 을 보며 가까운 바닷가를 찾았더니 금릉 포구가 나타났다. 바닷가를 따라 배가 떠나는 한림 포구로 향하여 북쪽으로 걸었다. 아침 바닷바람이 매서웠다. 바이러스 대비 마스크가 유용하게 쓰였다.

바다 색깔이 유난히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협재 바다의 특이한 색깔은 이 바다의 바닥이 하얀 모래인 것 때문으로 여겨졌다.


                                   

푸른 초록빛 물 건너 보이는 비양도




바닷가 초록빛 잡목, 까만 화산암 바위, 푸른 바다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모래사장을 걸어나는 아이들 모습.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바닷길은 금릉해수욕장을 시작으로 협재해수욕장과 포구를 지나 옹포리 포구를 거쳐서 한림항까지 이어진다. 비양도로 가는 첫배가 9시 20분 출발이어서 이에 맞추려고 약 8km의 해변길을, 마을 골목길을 통과할 때는 이곳 주민들에게 방향을 물어 확인하면서, 두 시간 가까이 열심히 걸어야 했다.

9시 10분쯤 드디어 한림항에 도착하였다. 선착장 입구로 들어가면서, 입구에 있는 경비초소 같은 곳 앞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비양도 선착장으로 가는 입구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어깨를 펴고 일어나면서 난색한 표정을 지으며, 여기는 한림항 포구이고 비양호 선착장은 여기서 10분도 더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차로 태워 줄 테니 빨리 가자고 나섰다. 입구 옆에 세워둔 허름한 작은 짐차를 가리키며 빨리 타라고 재촉했다. 차로 선착장까지 5-6분이 걸렸던 것 같다. 걸어서는 15분도 더 걸릴 거리였다. 고마워서 차에서 내리면서 얼마를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그러면 도로 그 자리로 데리고 가겠다고 반격을 하였다. 잠깐 동안 차 안에서 나눈 대화에서 나이가 84세라는 이 분의 친절한 모습은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서둘러 매표소로 들어가니 매표원 여자분이 빨리 승객 명단을 적으라고 재촉하였다. 그러면서 마이크로 출발하려는 배를 향하여 손님 한 사람이 있으니 기다려라고 방송을 하였다. 이 배를 놓치면 다음 여객선이 두 시간 뒤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십여 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마치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을 찍는 연출 같은 연속의 순간이었다.

배는 불과 15분을 달려 비양도에 닿았다.

한림항을 벗어나며 멀리 비양도가 보인다


비양도는 작은 화산섬으로, 고려 목종 때인 1002년에 화산 폭발과 함께 생겼다고 한다. 면적이 0.6 평방 km 가 채 되지 않고 섬 둘레가 2.5km, 높이가 114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으로 일종의 오름이었다.

이 섬의 봉우리 비양봉을 오르려고 길을 따라가다가, 집 몇 채를 지나서 아마 왼쪽으로 능선으로 향하는 길을 가야 하는데, 나는 오른쪽으로 나 있는, 작은 연못으로 가는 나무받침대가 있는 길로 방향을 잘못 잡았던 모양이었다. 십여 분을 가도 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나오지 않았다.

그새야 뭔가 잘못되었다 싶어서 산을 쳐다 올려보았다. 멀리 정상에 등대가 보였다. 밑부분에는 갈대숲이고 그다음 대나무 숲, 그리고 잡풀 지역이 이어지는 가파른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밑에서 위로 길을 더듬어보니 그런대로 부딪쳐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 빠지고 미끄러 지면서 갈대밭을 지나, 시커먼 대나무숲 속으로  대나무를 헤집으면서 가까스로 빠져나갔다. 계속 앞에 나타나는 45도 경사는 잡풀이 엉켜있거나 미끄러운 풀이 덮여있어서, 자칫 미끄러져 뒤로 넘어지면 댕굴댕굴 굴러서 저 밑바닥까지 굴러갈 것 같았다.

몸무게 중심을 잡으려고 힘을 주었더니,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땀을 계속 닦아야 하였다. 무사히 봉우리에 오르면서 한시름을 놓았다.

위로 멀리 정상에 등대가 점처럼 보인다.

산을 직선으로 오르다 중턱에서 내려다본 바다. 왼쪽으로 내가 뚫고 나온 키 낮은 대나무 숲이 보인다. 경사가 가파르니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다.

나를 태워준 여객선과 비양도,  집이 몇 채 안되는 마을 포구.

오름을 둘러싸고 있는 언덕, 바람을 견디며 만발한 이름 모를 꽃들.

산을 내려가다 통과한 대나무숲 길.

섬마을 유채꽃.


11시 20분에 한림항을 출발하여 비양도에 11시 35분에 도착한 배에 올라, 한림항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의 짧은 섬 여행이었지만, 아기자기한 섬 모습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흥미로웠다.

한림항 포구에서, 길가 집에서 나오는 바다일을 하는 듯 얼굴이 햇빛에 거뭇하게 된 중년 남자 분에게 점심을 할 식당을 물었더니 바로 바닷가 가까운 곳에 있는 순댓국집을, 혹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서, 조심스럽게 아주 친절하게, 가리켜주었다.

돼지국밥을 시켰다. 놀랍게도 제대로 된 국밥이, 새우젓과 푸짐한 부추, 알맞게 매운 고추와 어울려 일미였다.

이 여행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제주도를 들렸지만 주로 맛집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 경험과는 달리, 새로운 제주도 사람들을. 순간적인 만남에서도 친절하고 정이 넘치는 마음을 접하게 된 게, 또 다른 인간 세상을 느끼고 알게 되어, 코로나의 의기소침한 풍파 속에서 산뜻한 인간 향기를 맡게 되어 짧은 제주 여행을 감사하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이 결코 모두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좋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이, 세상의 일이 가끔 역설적일 수 있음이, 인생의 또 다른 묘미이고 가치인 것을 새삼 깨닫게 하여 주었다.

2020.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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