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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좀 별난 인생이었네.

 

徐 炳 吉 ( BYS Marketing 대표)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사람마다 인생살이가 각각 다르다는 게 가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다양하게 전개하는가? 주어진 사회의 여건인가, 아니면 저마다 지닌 서로 다른 개성과 의지 때문인가? 내가 살아온 삶도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인생의 하나이지만, 그래도 나에겐 별다른 느낌과 의미가 있기에 이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 인생은 어떤 인생이었나, 어떤 특징이 있었나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가운데 다음 세 가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직업, 여행, 그리고 종교 분야 이었다.


   먼저 직업에 대하여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직업, 직장을 경험하였다. ROTC 통역장교 복무를 마친 후, 같이 어울려 빈둥거리던 동기 친구의 권유로 지금은 없어진 TBC-TV에 함께 응시하여 몇 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우리 둘만 뽑혀서, 보도부 기자와 스포츠 PD를 하였다. 그 다음 조그만 수출회사 무역 과장을 시작으로 서울 생활을 출발했으며, 건설 중장비 오퍼상 사우디 현장 요원, 한미 경제 협의회 부장, 서울 올림픽을 전후하여 IOC 산하 올림픽 마케팅 회사의 한국사무소장, 그런 다음 올림픽 스폰서 기업인 Coca-Cola 한국 법인에서 홍보이사로 근무하다가, 스포츠 광고 및 방송 프로그램 에이전트 회사에서, 그리고는 IMF를 계기로 독립하여 2002 FIFA 월드컵 방송과 스포츠 광고 회사를 끝으로 오랜 직장생활을 마감하였다.

   그동안 내가 월급을 받으면서 종사한 회사의 숫자를 세어보니, 마지막 자영한 회사를 합하여 모두 12개나 되었다. 별난 팔자가 아니고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나에게 일어난 셈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처음 직업을 시작할 때도 친구의 제의로 시험을 쳐서 시작하였지만, 그 이후 일어난 모든 이동은, 모두 어떤 인물이 나에게 접근하여 새로운 자리를 제시하면서, 함께 일을 하지 않겠느냐 제의를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못 이긴 척 받아들이고는 새로운 업무를 출발하게 되었다. 왜 나에게 계속하여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하여 일어나다니.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알지 못하는 어떤 힘이, 나를 일종의 훈련을 시키려고 그런 조화를 부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 다음 별난 것은 여행. 인간은 모두 여행을 좋아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는지, 아니면 내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좀 많이 한 셈이다.

   첫 번째 여행은 조그만 무역회사 과장일 때인 1976,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KOTRA 무역 박람회 참가를 계기로 캐나다, 미국, 중남미를 간 것이 길을 열었다. 그 이후 직장을 바꿔 가면서 중동, 유럽, 호주, 미주 등지로 업무상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틈틈이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접하거나, 우리와 다른 생각/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90년대 들어서는 등산 친우나 동호회, 그리고 여행사의 단체 여행도 참가하게 되었고, 2천년 대에 들어서는 종교 관련 국제 모임에도 참가하면서 점점 횟수가 늘어났으며, 어떤 해는 네댓 번을 들락거리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 다른 나라의 여러 산을 오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이, 특히 산속이나 들판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이 나를 신비로운 느낌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다.

   이를 기간별로 세어보니, 1999년까지 이십여 년은 모두 합쳐서 불과 15회이었으나, 2000년부터 2009 10년 사이에 32, 그리고 2010년부터 올해까지 25회를 하여, 모두 합하면 70회가 넘었다. 이 가운데 몇 회는 북유럽, 남유럽, 미국 등지를 한 달 가까이 씩 기차나 버스로 부부가 배낭을 메고 땀 흘리며 돌아다녔으니, 어쩔 수 없이 나 때문에 아내가 고생도 많이 한 셈이다. 작년에는 한곳에 머물며 지내는 힐링 여행도 해보자는 아내의 제의로 네팔 고르카와 포카라에서 산과 호수를 보면서 보름 동안 지내는,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장거리 밤 비행기 타는 것도 힘이 겨워 해외여행도 졸업하였으면 하지만, 코카서스 지방을 다녀온 지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새로운 곳에 대하여 관심이 일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내 마음을 나도 알 수가 없다.


   이제 마지막 별난 것은 종교. 고등학교 2학년 때 종교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 부산 대청동 중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으며, 그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동기 친구의 권유로 대신동 모교 경남고 입구에 있던 말썽 많은 통일교회에 빠져들어, 세계적인 전도사가 되겠다고 대학을 영문과를 선택하였고, 집에서 쫓겨나면서까지 서울 청파동 통일교 본부에서 전도사 교육을 받았으며, 방학 때마다 지방에 나가 전도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다행히 대학 후반에 그 소굴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때 같이 다니다가 오랜 세월 뒤에 탈출한 친구들은 지금도 가끔 만나 옛날 방황하던 고난의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러다 사십 대에 들어, 직장 일로 미국인을 위한 불교 세미나에 참가하게 된 것을 계기로 다시 종교 병이 도져서, 지금 이 시대의 새로운 사상, 종교로 무엇이 있는가를 알려고, 정신과학/현대종교 분야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온갖 강의도 참가하였다. 이것들은 기()/정신과학, ()/단학(丹學), 초능력, 최면, UFO/외계인 채널링, 중국 화륜공, 프랑스 라엘, 한국 선도 수선제, 미국 람타 등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온갖 것들을 다 섭렵하였다. 그러다 인터넷을 통하여 한 미국인 의사가 영적인 채널링을 통하여 받았다는 책을 탐독하게 되었고, 이 책의 내용에서 “The Urantia Book”이 언급되기에, 아마존을 통하여 책을 구입한 후 이를 읽게 되었다. 2천 쪽이 넘는 이 책을 1년 동안 읽고는 마침내 이 책의 가르침에 정착하여, 지금 15년이 되도록 싫증을 내지 않고 꾸준히 읽으면서 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쨌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으니, 이 분야는 내 나름대로 답을 얻은 셈이다.


   되씹어보면, 직장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부딪치는 갈등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는 기회를 얻었고, 여행은 세상 여러 인종의 생활과 문화를 알게 되는 기회에 덧붙여, 친우들과 우정을 맺는 시간을 가졌으며, 특히, 아내와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생의 긴 여정에 많은 도움을 얻게 되어,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리고 종교는, 종교의 화두는 간단히 말한다면 “영혼” “하나님-()”이 존재하는가에 있겠지만, 오랜 세월의 방황 끝에, 그것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인간은 “아름다움, (), 그리고 올바름/진리”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인생을 갖게 하여준 것만으로도, 종교에 대한 추구의 생활이 나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생각해보면 망둥이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겁 없이 부딪치며 살아왔지만,

나에게 이러한 인생의 기회가 주어 진 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다만

헛되지 않은 한 인생이 되도록 노력하여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한편, 글을 쓰다 보니, 모두 자기 나름대로 뛰어난 생애를 살았을 텐데, 이렇게 자칭 별난 인생이라고 쓴 것이 혹시 어쭙잖은 인생을 결과적으로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염려가 든다. 아무쪼록 “이 친구 보기와는 다른 이런 면도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너그러이 이해하여 주길 바랄 뿐이다.

 

   2018년 여름 어느 무더운 날에 ---.

 

   들꽃 (핸드폰 : 010 5705 3757 bysmkt@naver,com)

 

 

2016년 6월 네팔, 용병으로 유명한 고르카 지방 산골, 이름은 그럴듯한 

"Manaslu Bamboo Cottage"를 떠나며. 

대나무 움막에 황토 침대가 일품(?)이었다.

 

 

*** 위 글은 교교 동문지 2018 9월호에 올린 글을 참고로 이곳에 옮겨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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