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우주와 대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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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2 편     우주들로 이루어진 우주

            

                         ( The Universe of Universes )

 

 

 

   멀리 뻗어나간 우주 아버지의 창조 세계의 웅대함은, 유한한 상상력이 이해할 수 있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 있다. 전우주의 거대함은 나와 같은 수준의 존재들까지도 그 개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유한생명의 마음은 이 우주의 계획과 그 배치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이들 우주의 물리적 구조와 경이로운 운영에서 대단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영원한 중앙우주와 시간 속의 일곱 대우주 위에 살고 있는, 다양한 부류의 지적 존재들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영원한 가능성의 면에 있어서, 우주 아버지가 실제로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물질의 창조계도 무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물질의 창조계 전체를 공부하고 관찰하면서, 비록 당신들 유한한 마음으로는 창조계가 비교할 상대가 없이 무한하며, 실제로 경계가 없겠지만, 우리는 어떤 주어진 시간 안의 순간에서는 창조계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물리적 법칙을 공부함으로써, 그리고 별들의 영역을 관찰함으로써, 무한한 창조주가 최종적인 우주의 표현을 아직 나타내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 무한함이 지니고 있는 우주의 많은 잠재적 가능성이 여전히 자신 안에 머물러 있으며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창조된 존재들에게 이 전우주가 거의 무한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러나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까마득하다. 물질 창조계는 여전히 물리적 제한이 있으며, 영원한 목표를 향하여 경험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이다.   


              1.     전우주 안에 있는 우주공간의 여러 단계들  
                  ( Space Levels of
 the Master Universe )


  
   우주들로 이루어진 우주는 끝없이 평평한 것도 아니고, 경계가 없는 입체도 아니며, 한없이 큰 원도 아니다. 확실히 그 규모의 크기가 있다. 우주의 물리적 조직구조와 운영 관리의 법칙은, 원력과 에너지 그리고 물체와 물력이 모여져 있는 광활한 전체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우주 공간 단위로서, 그리고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전체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정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물질 창조계를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물리적 우주가 그 한계를 규정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우주가 원형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그 한계가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모든 형태의 기본적인 에너지들이 전우주의 여러 우주공간 단계에 있는 곡선으로 된 통로를 따라서 항상 회전을 하고 있다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로서, 우리에게 이를 말해주고 있다.  

  전우주 안에 연속적으로 있는 우주공간의 여러 단계들이, 이미 조직되어 있으면서 부분적으로 생명이 거주하고 있거나, 또는 아직 제대로 조직되지 않았으면서 거주를 하지 않는 영역을, 이미 채워져 있는 공간의 주된 영역 부분을ㅡ전체 창조계를 구성하고 있다. 만약 전우주가, 그 사이사이에 상대적으로 조용한 지대를 순차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그 움직임에 대하여 저항이 줄어드는 일련의 타원형의 여러 공간 단계가 아니라면, 일부 우주 에너지들은 일직선의 통로를 벗어나서 무한한 멀리까지 추적을 할 수 없는 공간으로 솟구쳐 나가는 것을 관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원력과 에너지 또는 물체를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언제나 이것들은 거대한 공간 회로들의 궤도 안에서 힘차게 소용돌이치듯 회전하고 있다.


   파라다이스로부터 수평으로 뻗어나간 채워진 공간을 지나 밖으로 진행하면서, 전우주 안에는 여섯 개의 동심원 타원 모양으로, 중앙의 을 회전하는 공간 단계들이 존재하고 있다.


     1.   중앙우주 ㅡ 하보나

  

    2.   일곱 대우주

  

    3.   1차 외부 우주 단계

 

     4.   2차 외부 우주 단계

  

    5.   3차 외부 우주 단계

 

    6.   4차 가장 먼 우주 단계


   중앙우주인 하보나는 시간이 있는 창조계가 아니다. 이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 결코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는 10억 개의 웅장하며 완벽한 구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엄청난 규모의 암흑 중력의 덩어리들로 감싸여 있다. 하보나 중심에 고정적이며 절대적으로 균형이 잡힌 파라다이스 섬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를 21개의 위성들이 둘러싸고 있다. 중앙우주의 변두리에서 회전하는 엄청난 질량의 암흑 중력 덩어리 때문에, 이 중앙 창조계의 질량 용량은 거대우주에 있는 일곱 개의 모든 영역에서 알려진 전체 질량 용량을 합친 것을 훨씬 초과한다.


   파라다이스-하보나 시스템,  영원한 주위를 선회하는 영원한 우주는 전우주에 대한 완전하며 영원한 그 중심 핵이 되고 있다. 일곱 모든 대우주와 외부 공간의 모든 영역은, 파라다이스의 위성들과 하보나의 구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중앙의 집합체 주위에 설치된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

   일곱 개의 대우주들 기본 물리적 조직기구가 아니다. 대우주의 경계가 별들의 집단을 분리시켜 나누어지게 하거나, 창조계의 기본 단위인 지역우주 사이를 가로지르지 않는다. 각각의 대우주는 하보나 창조 이후 이미 구성되었거나 생명이 거주하고 있는 우주의 대략 7분의 1을 묶음으로 하는 단순한 지역적인 공간이며, 그리고 각각은 그 펼쳐져 있으면서 차지하고 있는 공간 안에 서로 비슷한 숫자의 지역우주를 가지고 있다. 당신들의 지역우주인 네바돈, 일곱 번째 대우주인 올본턴 안에서 최근에 창조된 것들 중의 하나이다. 


  거대우주 현재 구성이 완료되어, 생명이 거주하는 창조계이다. 이것은, 중앙 창조계의 영원한 구체들을 제외한, 전체적으로 진화를 진행할 가능성을 지닌 대략 7조 개의 생명거주 위성을 가진 일곱 개의 대우주들로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예상 수치는 잠정적인 것으로, 설계에 의하여 건설되는 우주행정을 위한 구체들과, 아직 조직구성이 완료되지 않은 우주에 널리 흩어져 있는 숫자들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전체 천체들의 배치 구상이 근본적으로 세워지지 않은 조건으로 인하여, 현재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거대우주의 변두리,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장자리는, 우리같이 천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일곱 개의 대우주마저도 아직 제대로 완성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신성한 중심으로부터 우리가 외부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생명이 거주하는 조직된 우주의 바깥 외부의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거대우주의 바깥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창조계의 머나먼 끝 모서리, 이 외부 울타리 가까이에, 당신네들 지역우주가 그 파란 많은 둥지를 틀고 있다.


  외부 우주의 여러 단계들.  생명이 거주하는 일곱의 대우주로부터 엄청나게 먼 거리에 있는 아주 먼 우주공간 안에, 물질을 이루려는 에너지와 원력이 광대한 믿을 수없이 거대한 회전을 일으키며 새로 생겨나고 있다. 일곱 대우주의 에너지 회로와 원력이 활발히 움직이는 이 거대한 외부 벨트 영역 사이에, 이들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공간의 영역이 있으며, 이것의 폭은 다양하지만, 그러나 평균적으로 대략 40만 광년 정도에 이른다. 이들 공간 영역은 우주의 안개, 별들의 먼지와는 상관이 없다. 이러한 현상을 연구하는 우리들 학생들은, 일곱 대우주를 선회하고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이들 영역에 존재하는 공간-원력의 정확한 상태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대우주의 현재 가장자리로부터 약 50만 광년의 거리에,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 활동이 시작하는 한 영역을 관찰할 수 있으며, 이 영역의 크기와 세력은 점차 증가하여 약 2천5백만 광년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에너지를 형성하는 거대한 원력의 바퀴는, 알려져 있고, 이미 구성되었고, 생명이 거주하는 모든 창조계 밖을 선회하는, 지속적으로 우주 활동을 하는 둥그런 띠 모양의 영역인 첫 외부 우주 단계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이들 영역 그 너머에도 더욱더 큰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왜냐면, 유버사의 물리학자들이 첫 외부 우주 단계의 가장 변두리 현상 지역 너머로, 5천만 광년 보다 더 먼 위치에서 원력이 나타나는 초기 단계의 증후를 탐지하였기 때문이다. 이들 활동은 전우주에 있어서 두 번째 외부 우주 단계에 있을 물질 창조계의 구성을 의심할 나위없이 미리 알게 하여준다.


   중앙우주는 영원에 속하는 창조계이다. 일곱 대우주들은 시간에 속하는 창조계이다. 네 개의 외부 우주 단계들은 의심할 나위없이 창조계의 궁극적 수준에까지 결과적으로 진화할 운명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한함이 부족한 무한함 만으로는 결코 완전한 무한함을 나타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고수하는 일부 존재들도 있다. 그러므로, 계속 팽창할 가능성을 지닌, 결코 끝남이 없는 우주는, 넷째 외부 가장 먼 우주 단계를 넘어서, 추가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창조계가 있을 것으로, 그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창조주의 무한함 또는 창조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어떻게 한정하여야 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전우주가 존재하고 있고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한계를 가지고 있고, 분명히 제한되어 있으며, 그 가장자리 끝이 빈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간주한다.



     
                  2.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의 영역
                   ( The Domains of the Unqualified Absolute )


  
   유란시아의 천문학자들이 점점 더 강력한 천체 망원경으로 신비스럽게 뻗어나간 외부우주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곳에서 놀랍게 진화하고 있는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물리적 우주를 보게 될 때, 그들은
전우주의 건축가들이 어떤 계획에 따라 벌이고 있는 도저히 추적을 할 수 없는 막강한 작업의 현장을 그들이 보고 있음을 당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진실로, 현재 외부우주 영역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 발현의 특징을 통하여, 어떤 특정한 파라다이스의 성품존재가 우주의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증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일곱 대우주의 바깥 울타리를 넘어서 확대되고 있는 이 우주 공간 영역은, 일반적으로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의 영역을 구성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비록 아무런 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맨눈으로는 올본턴 대우주 너머로 다만 두서너 개의 성운을 볼 수 있겠지만, 천체 망원경은 형성 과정에 있는 수백만에 수백만을 더한 이들 물리적 우주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망원경으로 탐색하여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별들의 영역은 올본턴 안에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진 기술을 갖춘 더 큰 망원경이라면 거대우주의 울타리를 넘어서 외부우주 공간의 영역까지 침투하여, 그곳에서 현재 구성 과정에 있는 미지의 우주를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당신들 탐사기구들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넘어서 또 다른 수백만의 우주들이 아직 거기에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새로운 망원경은 유란시아의 천문학자들에게, 멀리 뻗어나가 있는 외부우주 공간에서 적어도 3억 7천5백만 개의 새로운 은하계를, 신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여 줄 것이다. 이들 강력한 망원경은 또한, 전에는 외부우주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던 많은 섬 같은 우주들이 올본턴 은하계 조직의 일부라는 사실을 밝혀 줄 것이다. 일곱의 대우주들은 여전히 커가고 있다. 각 대우주의 가장자리는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성운들은 꾸준히 안정을 이루며 조직화되고 있다. 그리고 유란시아 천문학자들이 은하계 밖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어떤 성운들은, 실제로는 올본턴의 가장자리에 있으면서 우리와 함께 운행 중인 것들이다.


  유버사 천문 연구가들은 거대우주가, 우주 위에 동심원 고리처럼 있는 외부우주처럼 현재 생명이 거주하는 창조계를 중심으로 완전하게 회전하고 있는, 일종의 별과 행성 무리로 생성되기 이전 상태의 어떤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보고 있다. 유버사의 물리학자들은 이들 기록에도 없는 외부 영역들에 있는 에너지와 물질은, 일곱 대우주 안에 채워져 있는 전체 물질적 질량과 에너지 총량보다 이미 여러 배에 달하는 것과 같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 외부우주 공간 단계에 있는 우주 원력의 변화 현상은 파라다이스 원력 조직자들에 의한 작용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이들 원력들은 현재 거대우주에서 작용하고 있는 물리적 에너지의 전 단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올본턴 물력 관리자들은 이들 머나먼 영역의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움직임과 이미 조직되고 생명이 거주하는 창조계에 있는 물력 회로들과도 뚜렷한 연관이 없다.


   우리는 외부우주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엄청난 현상에 대한 그 의미에 대하여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더욱 거대한 미래의 창조가 현재 그 형성 과정에 있다. 우리는 그것의 웅대함을 바라보며, 그것의 광활함을 알 수 있고, 그것의 장엄한 크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영역에 대하여 유란시아의 천문학자들이 아는 것보다 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우리가 아는 한, 인간의 수준에 이르는 어떤 물질적 존재도, 어떤 천사나 다른 영적 생명체들도, 성운과 항성과 행성들로 이루어진 이 외부의 고리 안에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머나먼 영역은 대우주를 관리하는 행정부의 관리나 운영의 권한 밖에 존재한다.

   올본턴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형태의 창조계가, 현재 구성 중에 있는 완결자 봉사단이 미래에 활동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어떤 수준의 우주 창조가 현재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추정이 옳다면, 당신들 모두도 먼 훗날 그때에, 까마득한 과거에 당신들의 선배와 조상들이 가졌던 황홀한 환상의 경지와 꼭 같은 것을 아마 가지게 될 것이다.



             
               3.    우주의 인력/중력  ( Universal Gravity )


  
   물질적, 마음적, 영적인, 모든 형태의 힘-에너지들은 그것들이 대상을 움켜잡으려 하는 성질과,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비슷하며, 이를 우리는 인력/중력**이라 부른다. 성품 또한 
아버지의 독점적인 특별한 회로에 대하여ㅡ인력에 대하여 반응을 한다. 그러나 비록 이 회로가 아버지에게만 있는 특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다른 회로로부터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 아버지는 무한하며 그리고 전우주에 있는 네 가지의 모든 절대적인-중력/인력 회로 전반에 걸쳐서 활동을 하고 있다.  


   1.   우주 아버지성품 인력

   2.   영원한 아들영 인력

   3.   합동 행위자마음 인력

   4.   파라다이스 섬우주 중력


   이들 네 가지의 회로들은 하부 파라다이스의 원력 센터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들은 원력이나, 에너지, 물력 회로가 아니다. 이들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회로들이며, 하나님처럼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독립하여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몇 천년 동안, 중력/인력 조사단이 유버사에서 실시한 어떤 관찰 기록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이 전문가 일단은 전우주에 있는 각각 다른 중력/인력의 체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1. 물리적 중력.  그들은 거대우주에서 발생 가능한 물리적 중력, 중력의 전체 합계 추정량을 산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 결과를 현재 작용 중에 있는 절대적 중력 존재의 전체 추정치와 어렵사리 비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계산은, 우주 물질을 이루는 기본 물리적 단위에 대하여 중력이 반응하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였을 때, 거대우주에서 작용하는 전체 중력은 파라다이스가 끌어당기는 중력에 비교하면 대단히 적은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들 조사단들은 중앙우주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일곱의 대우주들은 현시점에 파라다이스의 절대적 중력 장악력 중 다만 5%만을 실제적인 작용에 사용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였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이러한 총량 이론에 의거하여 계산한다면, 현재 이 순간에 파라다이스 섬의 실제 우주 중력 작용의 약 95%는, 현재 조직되어 있는 우주의 경계를 넘어서 있는 물질적 체제를 통제하는데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계산은 모두 절대적 중력을 말하고 있다; 선형 중력은 상호 작용에 따른 현상이며, 이는 오직 파라다이스의 실제 중력을 앎으로서 계산될 수 있다.


   2.  영적 인력.  이렇게 상호 비교 추정 계산하는 꼭 같은 기법으로, 이들 조사자들은 영 인력이 현시점에 반응을 일으킬 가능량을 탐사하였으며, 그리고 단독활동 메신저와 다른 영 성품존재들의 협조를 얻어, 둘째 근원 중심에서 활동하는 영 인력의 총합을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시점에 활동 중인 영 인력의 총계를 추정하였던 것과, 거대우주 안에서 현재 실제 작용하는 영 인력의 값어치가 같다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현시점에 실질적으로 이러한 총체의 이론에 따라 계산된, 영원한 아들의 전체 영 인력은 거대우주 안에서 활동 중인 것을 통하여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발견들이 신뢰할만하다면, 우리는 외부우주 공간에서 진화 중인 우주들은 현시점에서는 전적으로 비-영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영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그들 자신의 물리적 존재에 대한 사실을 아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광대한 에너지의 발현에 관하여는 거의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에 대하여 만족스럽게 설명하여 줄 것이다.


   3. 마음 인력.  이들 전문가들은 이렇게 비교 산출하는 원칙을 활용하여, 마음-인력의 존재와 반응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전하였다. 비록 물력 관리자들과 그들의 협력자 안에서 발견된 이 마음의 형태는 마음-인력을 산출하는 기본 단위를 얻으려는 노력에 있어서 방해되는 요인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마음을 산출하는 단위는 정신의 세 가지 물질적인 그리고 세 가지의 영적인 형태의 평균을 냄으로 얻어졌다. 마음-인력의 작용을 위하여 셋째 근원과 중심이 가지고 있는 현시점의 가능량을, 이러한 총량 이론에 따라서 산출함에 있어서 이를 방해하는 요소는 거의 없는 셈이다. 이러한 예와 같은 발견들이 비록 물리적 중력, 영적 인력의 산출에서처럼 그렇게 확고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발견은 비교적 대단히 도움이 되며 흥미롭기까지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탐구자들은, 합동 행위자의 지능적인 끌어당김에 반응하는 마음-인력의 약 85% 정도는 현재 존재하는 거대우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마음의 활동이, 현재 외부우주 공간 영역 전반에서 진행 중인 관측 가능한 물리적 활동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연관이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정이 아마 정확성에 있어서 거리가 멀 수도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지능적인 힘의 조성자들이, 거대우주의 현시점의 바깥 가장자리 한계를 넘어서 있는 우주 공간의 차원에까지 이르는 우주의 진화를, 현재 지휘하고 있다는 우리들의 믿음과도 일치하고 있다. 이렇게 추정한 지능의 성질이 무엇일지라도, 그것은 영적-인력에 반응하는 것들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산출 계산은, 추정 가정된 법칙들을 근거로 한, 최선의 예상치들이다. 우리는 이들이 거의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얼마의 영적 존재들이 외부 우주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두의 존재가 그러한 거대한 측정과 관련된 계산에 있어서 뚜렷이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성품 인력 은 계산이나 산출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 회로는 인식하지만, 그것에 대하여 반응하는 질량으로나 숫자로 어떤 실체를 측정할 수가 없다.


** 중력/인력(重力/引力 gravity) : gravity 는 일반적으로 중력(重力)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나, 중력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끌어당기는 물리적인 현상에만 해당되는 표현으로서, 유란시아 책에서 언급하는 gravity 는 물질적인 힘뿐만 아니라 마음, 영, 성품 등 비-물질적인 것이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들 모두를 중력으로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않음. 따라서 물질적 인력은 "중력"으로, 나머지 마음, 영, 성품과 관련되어 끌어당기는 힘은 '인력"으로 번역하여 그 의미를 명확하게 표현하였음.  



     
              4.  
우주공간과  움직임  ( Space and Motion )

  
   우주 에너지의 모든 기본 단위가 되는 것들은 근본적으로 회전을 하고 있으며, 우주의 궤도를 선회하면서, 각각 그들의 사명을 이행하고 있다. 공간이 있는 우주들과 이를 구성하는 체제와 세계들은, 전우주의 여러 공간 단계에 있는 끝없는 회로를 따라 움직이는, 모두 회전하는 구체들이다. 전우주에서 모든 중력의 중심인,
파라다이스의 영원한 , 하보나의 가장 중심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절대적으로 고정적이지 않다.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는 그 활동에 있어서 공간으로 제한되어 있으나, 이 절대와 움직임과의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확실하지 않다. 움직임이란 본래부터 그 안에 있던 것인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움직임이 공간 안에 본래부터 있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간 움직임마저도 그 자체에 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변환이 안된 순수한 것(Unqualified)과 움직임과의 관계에 관하여서도 우리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 누가 또는 그 무엇이, 현재 있는 일곱 개의 대우주의 울타리를 넘어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원력-에너지가 변화하는 이 거대한 활동들을 참으로 일으키고 있다는 것인가? 움직임의 기원과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1.  합동 행위자가 공간 안에서  움직임을 처음 일으켰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2.  합동 행위자가 공간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증명할 수가  없다.

  
   3. 
우주 절대는 움직임이 일어나도록 하는 근원이 아니다. 그러나 움직임에 의하여 생겨난 모든 긴장을 평등하게 하고 통제를 한다.


   원력 조성자들은 외부우주 공간에서 현재 별들의 진화를 진행시키고 있는 거대한 우주 바퀴의 생산에 대하여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런 활동을 위한 그들의 능력은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가 있는 어떤 우주 공간을 수정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우주 공간은 아무것도 아니며ㅡ부정적이다. 그것은 어떤 긍정적인 것, 비-공간적인 것과 관련을 지을 때만, 다만 존재한다. 그러나 공간은 현실로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안에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며 움직임을 있게 하는 것이다. 공간은 움직이기조차 한다. 공간의 움직임은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1.  기본 1차적인 움직임ㅡ공간의 숨 쉼, 공간 자체의 움직임.

  
   2.  2차적인 움직임ㅡ연속적으로 있는 공간의 단계들이 교대로 방향을 바꾸는 회전.

  
   3.  상대적인 움직임ㅡ어떤 움직임을 
파라다이스를 기본 기준점으로 하여 평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상대적임. 1차 및 2차의 움직임은, 움직임이 없는 파라다이스에 대하여 움직이는 것으로서, 절대적이다.


   4.  모든 다른 움직임들을 조정하기 위하여 보완하는 또는 상호 연관적인 움직임.


   당신들의 태양과 그와 연관된 행성들 사이의 현재 관계는, 우주 공간에 있어서 많은 상대적이고 그리고 절대적인 운동들을 보여주는 한편, 천문학적 관찰자에게는 당신들이 우주공간에 상대적으로 고정적인 위치에 있으며, 그리고 주위를 감싸고 있는 별들 집단의 흐름이, 당신들의 계산으로는 공간 안에서 바깥 방향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계속 속도를 증가하여 외부 방향으로 비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 당신들은 채워져 있는 모든 우주 공간인 물리적 창조계가, 현재 바깥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팽창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당신들이 속한 지역우주 창조계(네바돈)는 우주가 바깥 방향으로 팽창하는 이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전체 일곱 개의 대우주는, 전우주의 외부 영역과 함께, 20억 년 주기의 우주공간의 호흡에 동참하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고 수축할 때, 채워진 공간 안에 있는 물질 질량은 파라다이스의 중력의 끌어당김에 대하여 교대로 이에 반대 방향에서 맞서거나 또는 같은 방향으로 함께 하거나 한다. 창조계의 물질 에너지 질량의 움직임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우주공간 의 일이지, 원력-에너지 의 일이 아니다.


   비록 당신들이 천문학적인 속도의 측정에 있어서 분광기(分光器 spectroscopic)를 이용할 경우, 당신들의 대우주나 다른 연관 대우주에 속한 별들의 영역에 대하여 적용할 때는 상당히 신뢰할 만하겠지만, 외부우주 공간의 영역과 관련하여는 그러한 방법은 전혀 믿을 수 없다. 분광선들이 가까이로 접근하는 별들 때문에 정상적인 것에서 보라빛 쪽으로 자리가 옮겨지게 된다. 이와 같이, 뒤로 물러나는 별들의 경우는 이들 선들은 적색 방향으로 위치를 옮기게 된다. 많은 요소들이, 바깥에 있는 우주들의 물러나는 속도가, 그 거리가 1백만 광년 증가할 때마다 초당 1백 마일(*160 km) 이상의 비율로 증가하는 것 같이 보이도록 영향을 준다. 앞으로 더욱 강력한 망원경이 완성되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멀리 존재하는 체제들이 우주의 어느 한 부분에서 초당 3만 마일[* 약 4만 8천 km] 이상의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명하게 후퇴하는 속도도 사실이 아니다. 이는 관찰 각도와 시공간의 왜곡 등 다른 수많은 요소의 오류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러한 왜곡 중 가장 큰 것은, 일곱 대우주가 지배하는 영역 다음에 있는 외부우주 공간에 있는 광활한 우주가, 거대우주의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들 셀 수없이 많은 성운과 그에 연관된 항성과 구체들이 중앙 창조계에 대하여 현재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일곱 대우주들은 파라다이스에 대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두 번째 외부우주의 은하계들은, 일곱 대우주와 마찬가지로, 파라다이스에 대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유버사의 천문 관측자들은 그들이 멀리 우주 공간 세 번째 외부 벨트에서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는 회전의 움직임에 대한 증거를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우주에 있어서 연속된 우주 공간이 이렇게 교대로 방향을 바꾸는 것은, 우주 절대가 행하는 전우주 내의 중력의 기법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기법은 원력을 상호 조정하고 공간에 있는 긴장들 사이의 평균을 이루는 것이다. 공간은 물론 움직이는 작용은 중력의 상호 보완, 또는 평형을 이룸이다.


            

           5.  
공간과 시간  ( Space and Time )


  
   공간과 같이, 시간도
파라다이스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지만, 그러나 꼭 같은 관점에서 그런 것이 아니고, 오직 간접적으로 그러하다. 시간은 움직임의 덕택으로 생겨나며, 마음이 본성적으로 연속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실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움직임은 시간에 대하여 필수적인 존재이지만, 그러나 파라다이스-하보나의 기준 일(日 day)을 임의적으로 하루로서 그렇게 인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움직임에 기초를 둔 우주적 시간 단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 공간 전체가 하나로 숨을 쉬기 때문에 지역적인 것은 시간의 근원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간은, 비록 파라다이스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무한한 것이 아니다; 공간은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에 의하여 채워지기 때문에,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는 공간의 절대적 한계를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절대적인 시간은 영원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다만 시공간의 창조계, 일곱 대우주 안에서만 서로 분리가 되지 않는다. 비-시간적 공간(시간이 없는 공간)은 이론적으로 존재하지만, 참으로 비-시간적 장소는 오직 파라다이스지역 뿐이다. 비-공간적 시간(공간이 없는 시간)은 파라다이스의 단계에서 작용하는 마음 안에서만 존재한다.

   파라다이스와 바로 부딪치고 있으며, 채워지지 않은 공간으로부터 채워진 공간을 분리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없는 중간-공간(midspace) 지대는, 시간으로부터 영원으로 바뀌는 통과 지대이며, 그러므로 파라다이스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파라다이스 시민권을 얻는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들이 지나가는 이 통과 시기 동안 필연적으로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시간을 의식하는 방문자 은, 그러므로 잠을 자지 않으면서 파라다이스를 방문하러 갈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시간의 생명체로서 머물러 있는다.  


   시간과 갖는 관계는 공간 안에서 움직임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시간에 대한 인식은 존재한다. 연속성은 움직임이 없더라도 시간을 의식하게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타고난 마음의 속성으로 인하여,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적게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육신을 가진 이 땅 위의 생활 기간 동안마저도, 비록 인간의 마음이 공간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지만,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은 비교적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시간 그 자체는 원천적으로 마음의 성질이 아니다:


   시간을 인식함에 있어서 세 가지 다른 수준이 있다.


   1. 마음이 감지하는 시간ㅡ연속성, 움직임, 그리고 경과에 대한 느낌을 의식함.

  
   2. 영이 감지하는 시간ㅡ하나님으로 향한 움직임에 대한 통찰, 그리고 점차 증가하는 신성이 여러 단계를 상승하는 움직임을 알아 봄.

  
    3. 성품존재는 현재에 대한 의식 그리고 시간 경과에 대한 인식과 함께 실체에 대한 통찰을 함으로써 독특한 시간 감각을 창조한다.  


   영적이지 않은 동물은 오직 과거만 알며, 현재 안에서 살아간다. 영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은 예지(통찰)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인간은 미래를 예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직 앞을 내다보는 진취적인 자세만이 개인의 성품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고정적인 윤리나 전통적 도덕은 겨우 수준 높은 동물을 조금 벗어나는 정도이다. 금욕주의 역시 자기를 수준 높게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윤리와 도덕을 신봉하는 자들은 이들이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우주의 실체와 함께 살아있을 때, 참된 인간이 된다.

   인간 성품존재란 시간과 공간의 일들을 단순히 행동에 옮기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 성품존재는 또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 제공자로서도 행동할 수가 있다.

  


          6.  우주의 전반적 관리  ( Universal Overcontrol )


    
   우주는 정지 상태에 있지 않다. 안정되어 있음은 비활동성의 결과이기보다는, 균형이 잡혀있는 에너지, 상호 협력하는 마음, 서로 조정하는 모론시아, 영의 전반적인 관리, 그리고 성품존재들이 하나로 합쳐서 행동함에 따른 산물이다. 안정이란 전적으로 그리고 항상 신성에 비례한다.

   우주 아버지는 전우주의 물리적 관리에 있어서, 우선적인 것과 기본 으뜸이 되는 것은 파라다이스 섬을 통하여 행사하신다. 하나님영원한 아들 개체를 통하여, 우주에 대한 영적 관리에 있어서 절대적이다. 마음이 작용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아버지아들합동 행위자 안에서 서로 협조적으로 활동을 한다.

   셋째 근원 중심은, 서로 맞물려 연관 지어져 있는 물리적인 그리고 영적인 에너지와 조직기구들이, 그가 지닌 우주의 마음에 대한 절대적인 장악력에 의하여, 그리고 그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우주적인 물리적-영적 인력을 행사함으로써, 서로 상호 협력하고 안정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물질과 영적인 것들 사이에 어떤 연관이 생기어날 때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발생하는 어느 곳이라도, 그러한 마음의 현상은 무한한 영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마음은, 물질의 수준에 있는 물리적 힘 및 에너지와, 영적 수준에 있는 영적 힘과 존재들 사이를 홀로 서로 연결할 수 있다.   

   당신이 우주의 현상을 고찰함에 있어서 언제나, 물리적, 마음적, 영적인 에너지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고려할 것과, 그리고 경험을 하는 신품절대들의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 예상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적절한 가능성의 여유를 고려할 것을 항상 확실히 하여라.

   우주는 다만 수량적인 면에서, 중력의 측정 면에서 높은 예상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기본 물리적 원력까지도 선형 중력에 대하여 반응을 하지 않으며, 또한 궁극의 단계에 있는 우주 실체들이 가지고 있는 높은 마음의 의미와 참된 영적 가치들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질량적으로는, 우주는 물리적, 마음적, 또는 영적인 원력/힘들이 새롭게 서로 연결되는 경우에 대하여 높은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에너지 또는 원력/힘들이 결합하는 많은 경우는, 이를 정밀하게 관찰하였을 때, 부분적으로 예측이 가능하다. 물질, 마음, 영이 생명체의 성품에 의하여 하나로 통일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이러한 자유의지의 존재가 하는 결정을 완전히 예상할 수가 없다.

   모든 상태의 기본 근원적 원력, 미성숙한 초기 단계의 영, 기타 비-성품적으로 궁극적인 상태의 것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그러나 밝혀지지 않은 어떤 법칙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리고 제한되어 있고 격리된 상황의 현상과 부딪쳤을 때, 이들은 자주 허를 찌르는 듯 당황하게 하는 신축성 있는 반응과 폭넓은 움직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우주에 출현하는 활동들에 의하여 모습을 보이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자유스러운 반응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밝혀지지 않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것들은ㅡ이것들이 힘의 기본 원초적 단위가 나타내는 현상이거나, 마음의 어떤 알 수 없는 단계에서 일어나는 반응, 또는 외부우주 공간의 영역에서 생성 과정에 있는 광활한 우주가 생기기 전의 단계의 현상과 관련이 있거나 간에ㅡ아마 궁극위의 활동과 절대들의 존재와 그 움직임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일 것이며, 이는 모든 우주의 창조자들이 활동을 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놀라운 다양성과 심도깊은 상호 협조성은 절대위들의 존재와 움직임을 의미한다는 사실과, 그리고 분명하게 동일한 원인에 대하여 그렇게 다양하게 보여주는 반응의 다양성은, 절대들이 순간적인 상황의 원인에 대하여서 뿐만 아니라, 모든 전체 우주 전반에 걸쳐서 모든 연관된 다른 원인들에 대하여 반응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개인들은 그들 각각의 운명 보호자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행성, 체제, 성단, 지역우주, 그리고 대우주에는 각각의 통치자가 있으며 그들은 그들 영역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하보나와 거대우주까지도 그러한 높은 책임을 위탁받은 자들에 의하여 보살펴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 파라다이스로부터 네 번째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 밖에 위치하고 있는 우주 공간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이들 전우주를 하나로 취급하여 그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뒷받침하며 보살펴주고 있는가? 실존적으로 전반적인 보살핌은 아마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에게 속한 것이겠지만, 그러나 경험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보나 우주 그 이후에 생겨난 것들은 다음에 열거하는 존재들에 의존하고 있다:

 

    1.  잠재성에 있어서는 절대들.

   
    2.  방향성에 있어서는
궁극

  
    3.  진화를 위한 상호 협조성에 있어서는
지고

  
    4.  특정한 통치자가 나타나기 이전 시기의 행정에 있어서는
전우주의 건축가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는 모든 우주 공간을 채워준다. 우리는 신품우주 절대들의 정확한 위상에 대하여 모두가 명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신품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가 활동하는 곳에서는 절대들이 활동함을 알고 있다. 신품 절대는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공간 안에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궁극은 네 번째 우주 공간 단계의 외부 가장자리에서는 공간 안에 존재하거나 또는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궁극이 전우주의 변두리를 넘어서까지 공간을 가지는 존재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계 안에서는 이 궁극은 세분 절대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들을 창조적으로 조직하는 일을 위하여 점진적으로 활동을 벌일 것이다.  

 



                 7.   부분과 전체  ( The Part and the Whole )   


 
   모든 시간과 공간을 망라하여, 그리고 어떠한 성질이든 상관없이 모든 실체와 관련하여, 누구도 도저히 변경할 수 없으며 어느 개체나 성품존재와는 상관이 없는,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의 섭리 작용인, 하나의 법칙이 움직이고 있다. 자비란
하나님이 개개인에 대하여 베푸는 사랑의 자세를 구체화한 것이다. 공평함이란 하나님이 전체에 대하여 갖는 자세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개별 성품존재의 마음을 필요없이 무시하지 않으며, 그러나 그의 뜻은 우주들의 우주 전체를 실제로 다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법은 모든 그의 존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근원적으로 멋대로 독단적이지 않으시다. 제한된 안목과 한정된 관점을 가진 당신들에게는, 하나님의 행동이 흔히 독재적이고 멋대로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반복적으로 일을 행하는 그의 방법인, 하나님의 단순한 습관일 뿐이며, 그리고 그분은 언제나 모든 일을 순조롭게 행하신다. 당신네들은 하나님이 같은 일을 같은 방법으로 반복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최선의 길이 올바른 길이며, 그러므로 무한한 지혜가 항상 최선의 길이 그렇게 정교하고 완전한 방법으로 행하여지도록 하고 있다. 당신은 또한, 자연이란 신품 혼자만의 독단적인 행위의 것이 아님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현상들 안에는 다른 여러 가지의 영향이 존재하고 있다.

   어떤 사태를 더욱 나쁘게 악화시키거나, 또는 언제라도 열등한 방법으로 순전히 개인적인 행동을 하게 허용하는 것은,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에 역행하는 것이며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신성한 상황에서, 어떤 극단적인 환경에서, 지고의 지혜가 다른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하여 올 경우에ㅡ만약 완전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이유로 또 다른 반응의 방법이 강요된다면, 그때 그곳에는 보다 나은 방법으로써, 모든 지혜를 갖추신ㅡ하나님이 그보다 더 나은 더욱 적절한 방법으로 활동과 작용을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명확히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더 높은 단계의 법이 표현되는 것이지, 더 낮은 수준의 법으로 반전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계획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고질적 습관에 얽매인 노예가 아니다. 무한의 법칙들 사이에는 갈등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법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본성을 지닌 완전함의 모든 것이다. 이들 법칙들은 결점이란 결코 없는 결정으로서, 어떤 잘못도 추궁할 수 없는 행동의 표현이다. 법칙이란 무한하며, 완전하고, 신성한 마음의 변함이 없는 반응이다. 하나님의 행위는 이렇게 분명히 한결같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의지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 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심지어 변화의 그림자조차도 없다.” 그러나 우주 아버지에 대하여 참으로 말하여질 수 있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의 아래에 있는 모든 지적 존재들에게 또는 진화 과정의 생명체들에게 꼭 같은 확신으로 말하여 질 수는 없다.

   하나님은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당신들은 모든 일상적인 상황 아래서, 한결같이 꼭 같은 일상적인 방법으로, 꼭 같은 일을 행하는 그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된 것들과 존재들에 대하여, 안정과 고정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 그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행동의 꾸준함과 행위의 한결같음은, 개인적이며, 의식적이며, 높은 의지에 의한 것이다. 왜냐면 위대한 하나님은 그 자신의 완전함과 무한함에 대하여 어쩌지 못하는 노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적 힘이 아니다. 그분은 노예처럼 법에 얽매인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은 수학의 방정식도 화학의 공식도 아니다. 그분은 자유 의지를 지닌 근원적인 성품존재이다. 그분은 성품으로 가득 채워져 넘쳐나는 존재이며,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성품을 주는 우주의 샘물인, 우주 아버지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물질 유한생명의 가슴 안에 한결같이 살아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시간을 담는 틀을, 순간을 넘어서 인간 첫 생애의 전체 모두를 감싸 안을 정도로 크게 확대한다면, 그때는 영이 인도한 하나님 자녀의 생명 안에 태어난 영의 열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뚜렷이 구별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만약 인간의 생애가 모론시아의 경험까지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더욱 확대된다면, 인간의 성품이 우주 아버지의 성품과 서로 교류하는 경험의 신성한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하는, 시간 속의 생명체들이 영적으로 활동하는 행동 안에서, 신성한 하나님의 뜻이 밝게, 더욱 밝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부성애(父性愛 Fatherhood) 그리고 인간의 형제애(兄弟愛 brotherhood)는, 개별 성품존재의 수준에서는 부분과 전체라는 모순을 보여준다. 하나님각각의 개인을 하늘 가족에 속하는 개별의 자녀로서 사랑한다. 그러므로 하나님모든 개인을 사랑한다. 그분은 개인을 구별하지 않으시며, 그리고 그분의 우주적 사랑은, 그를 우주적 형제애, 즉 전체와 관계를 맺는 존재이게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각각의 성품존재를, 모든 영원에 걸쳐서 다시 대체할 수 없는 의지를 지닌 생명체로, 무한에 걸쳐서 둘도 없는 자녀로, 우주 아버지의 독특한 자식으로, 절대적인 개별 존재로 만든다. 아버지의 사랑은, 하늘 가족의 구성원 각각을 빛나게 하여, 각각의 성품적 존재의 독특한 성격을, 모든 것의 아버지인 아버지의 회로 밖에 놓여 있는 비-성품적 수준과 대비하여 선명하게 부각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의지 생명체 각각이 지니고 있는 초월적 가치를 뚜렷이 보여주며, 우주 아버지파라다이스의 위상에 있는 가장 높은 창조주의 성품으로부터, 시공간의 진화 세계 위에서 인류-인종의 여명기에 있는 야만인 부족들 가운데 의지의 권위가 가장 낮은 성품존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자녀들 각각에게 부여하는 높은 가치를 어김없이 나타내 보여준다.

   개개인을 위한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은,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자녀로서 자유의지를 가진 자녀가 되는 우주적 형제관계를 갖게 하여, 모든 개인을 신성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는 존재가 되도록 한다. 그리고 이 형제관계는 우주 보편적이기에, 전체의 관계이다. 형제관계가 우주 보편적일 때는, 개개인의 관계를 나타내지 않으며, 모두의 관계를 말한다. 형제관계는 전체의 참모습이며, 그러므로 부분의 질적 수준에 대비되는 전체의 질적 수준을 말해준다.

   형제애는 우주의 존재들 안에 있는 모든 성품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는 실제 요소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개인과의 관계로 인한 결과로 생기는 혜택을, 또는 손해를 피할 수가 없다. 부분은 전체에 따라서 이익을 얻거나 또는 고통을 당한다. 각 개인의 선의의 노력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 각 개인의 실수나 악덕은 모든 사람의 고난을 가중시킨다. 부분이 움직이면, 그렇게 전체가 움직인다. 전체가 진보를 하면, 그렇게 부분이 앞으로 나아간다. 부분과 전체의 상대적 속도는, 부분이 전체의 타성에 의하여 지연되거나, 또는 우주적 형제애의 힘에 의하여 앞으로 나아가거나 하는 결정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개별적으로 높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로서, 그가 머물러 거처하는 본거지를 가지고 계시며,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광대한 우주 안에 개별적으로 나타나 존재하고 계시며, 그리고 거의 무한한 숫자의 존재들과 개별적으로 접촉을 한다는 사실은 하나의 신비로운 일이다. 그러한 현상은 인간의 이해 단계를 뛰어넘는 신비의 사실로서, 적어도 이러한 사실이 당신들의 믿음을 약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무한에 이르는 장대함, 영원에 이르는 막강함,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함과 영화로움과 같은 하나님의 특성이 당신들을 무섭게 하거나, 어지럽게 하거나, 낙담하게 하지 않도록 하라. 왜냐면 아버지는 당신들 어느 누구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당신 안에 살고 계시며,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 모두가 말 그대로 움직이며, 실제로 살고 있으며, 진실로 우리들의 존재를 품고 계시는 것이다.


   비록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그의 신성한 창조자들과 그가 창조한 생명체인 자녀들을 통하여 활동하고 움직이지만, 그러나 그분 역시 당신과 함께하는 그렇게 숭고하고, 거의 성품적인, 가장 친밀한 내적 접촉을 즐기고 계시는데, 이는 아버지의 작은 한 조각이 인간의 혼과 함께 그리고 그 조각이 실제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유한생명 마음과 교류하는 신비의 소통인 것으로서, 이는 우리들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이러한 선물과 함께함을 안다는 것은, 아버지가 그분의 신성한 하늘의 협조자들뿐만 아니라, 시간 안에서 진화하는 그의 유한생명 자녀들과도 친밀한 접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버지파라다이스 위에서 참으로 살고 계신다. 그러나 그분의 신성한 존재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도 역시 살아가고 계신다.

   비록 아들의 영이 모든 육신에게 쏟아져 내릴지라도, 비록 한분 아들이 한때 유한생명 육체의 모습으로 당신들과 함께 살았을지라도, 비록 세라핌 천사가 당신을 개인적으로 보호하고 인도할지라도, 둘째 또는 셋째 중심 본부에 있는 신성한 존재의 어느 누구도,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어떻게 그렇게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거나 또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을 희망할 수 있겠는가, 당신 안에 있을 수 있고, 당신의 진정한 그리고 신성한 자신, 심지어 당신의 영원한 자신이 되는 것으로, 누가 자기 자신의 일 부분을 준 적이 있는가?

 

           
             8.   
물질, 마음 그리고 영  ( Matter, Mind, and Spirit )



    “
하나님은 영 이시다.” 그러나 파라다이스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물질 우주는 항상 모든 영적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영의 존재 그리고 영으로 상승하는 자들은 물질 실체로 된 물리적 구체 위에서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우주의 힘이 내려 주어져서, 우주의 중력이 작용하는 영역이 생김은 파라다이스 섬의 활동과 작용에 의한 것이다. 모든 원천적인 원력-에너지는 파라다이스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리고 미지의 우주를 형성하는 물질이, 채워진 우주 공간 안에서 작용하는 힘의 충전 요소인 초-중력(supergravity) 존재의 형태로, 지금 전우주에 걸쳐서 두루 순환하고 있다.

  밖으로 향하여 펼쳐져 있는 우주 안에서, 파라다이스로부터 떠난 힘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하더라도, 이 힘은, 결코 끝남이 없으며, 언제나 존재하며, 영원한 의 끌어당김에 대하여 실수를 하지 않으며, 우주의 영원한 공간의 길 위를 순종적으로 본성적으로 한없이 따라서 돌고 있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리적 에너지는 우주의 법칙에 대하여 참으로 꾸준히 복종하는 하나의 실체이다. 오직 생명체의 의지 활동 안에서만, 신성한 하나님의 길과 본원의 계획을 벗어난 변화가 있어 왔을 뿐이다. 원력과 에너지는 중앙에 있는 파라다이스 섬의 안정된 고정성, 항상 일정하며 변화가 없음, 그 영원성에 대한 우주적 증거이다.


  영을 내려보내주심, 그리고 성품존재를 영적으로 되게 함은 영적 인력이 지배하는 영역으로서, 이는 영원한 아들의 소관이다. 그리고 모든 영적 실체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는 이 아들의 영적 인력은, 파라다이스가 모든 강력한 힘으로 물질을 장악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실이며 절대적이다. 그러나 물질적 마음을 가진 인간은, 오직 영혼의 영적 통찰력에 의하여서만 알아볼 수 있는 영적 성질의 사실적이고 강력한 작용과 활동보다도, 물리적 성질이 물질적으로 드러난 모습에 대하여 자연적으로 더욱 친숙하고 가까운 것이다. 

  우주에 있는 어떤 성품존재의 마음이 더욱 영적으로ㅡ하나님처럼 된다면, 물질 중력에 대하여 점점 적게 반응을 하게 된다. 물리적 중력으로 측정되는 실체는, 영적 내용의 질에 의하여 결정되는 실체에 대하여 정반대이다. 물리적-중력 작용은 비-영적 에너지를 양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며, 영적-인력 작용은 살아있는 에너지인 신성을 질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파라다이스가 물리적 창조계에 대하여 갖는 관계는, 그리고 영원한 아들이 영적 우주에 대한 관계는, 합동 행위자가 마음의 영역, 즉 물질적, 모론시아적, 영적 존재와 성품존재들의 지능적 우주에 대하여 갖는 관계와 같다.

  합동 행위자는 물질적 그리고 영적 실체 둘 모두에 대하여 반응을 하며, 그러므로 모든 지능적 존재, 즉 물질적 그리고 영적 두 차원을 결합하여 하나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존재들에 대하여 활동하는 우주적 봉사자로서 근원적으로 되어 있다. 지능을 내려줌은, 마음의 현상 안에 있는 물질적 그리고 영적 존재에 대한 봉사행위는, 합동 행위자의 고유한 독점적 소관이며, 그러므로 합동 행위자는 영적 마음의 동반자, 모론시아 마음의 진수, 시간 속의 진화 생명체가 지닌 물질 마음의 본질 바탕이 되는 것이다.

   마음은 기능적인 기법(technique)이며, 이것에 의하여 영의 실체들은 생명체의 성품존재들과 경험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심지어 인간의 마음이 서로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가능성도, 사물과 관념, 가치 등을 서로 조정하는 능력도, 초-물질적(superrmaterial)인 것이다.


   비록 유한생명 인간의 마음이 우주적 실체의 상대적인 7 단계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인간의 지능은 유한한 실체가 3단계로 작용하는 의미의 많은 부분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1. 물질.  운동에 의하여 변화되었거나, 마음에 의하여 제한된 경우는 제외하고, 선형 중력에 종속하는 조직화된 에너지.


   2.
마음.  물질 중력에 대하여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며, 영에 의하여 변화되었을 때, 참으로 자유로워지는 조직화된 의식.


   3.
.  가장 높은 수준의 성품적 실체. 진정한 참된 영은 물리적 중력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품존재의 높은 품위인 모든 진화하는 에너지 조직에 대하여 그 진화를 일으키게 하는 영향이 되는 것이다.


   모든 성품존재들의 존재 목적은 영이다. 물질적으로 모습을 나타난 것들은 상대적인 것이며, 그리고 우주적 마음은 이들 두 개의 우주적 상대 대상물, 물질과 영 사이에서 조정을 하는 것이다. 마음을 내려주심과 영을 위하여 도와주심은, 신품으로 협력하는 분들인 무한한 영영원한 아들이 하는 일이다. 총체적 신품의 실체는 마음이 아니며, 성품에 의하여 하나로 합쳐진 영-마음, 마음-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과 사물 두 가지의 절대는 우주 아버지 그분 안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파라다이스 위에서 물리적, 마음적, 영적 세 가지 에너지들이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다. 진화하는 우주에서 성품존재 안을 제외하고는 에너지-물질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영은 마음의 중재를 통하여 높은 경지의 완성을 이루려고 애쓰고 있다. 영은, 하나님이 영이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들이 성품으로서 경험을 하는 기본적인 실체이다. 영은 변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모든 성품존재의 관계에 있어서, 영은 마음과 물질 모두를 초월하며, 이는 진보 과정에서 경험에 의한 성취에 영향을 주는 변수(變數)가 된다. 

   우주의 진화에 있어서, 물질은 신성한 하늘에 대한 깨달음에 의하여 영의 광채가 나타남으로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진 철학적인 그림자가 되지만,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물질-에너지의 실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마음, 물질, 영은 동등하게 실제로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성품존재가 신성을 획득함에 있어서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신성을 인식하는 것은 영적인 진보에 따른 경험이다.

   영적으로 된 성품(각 개개의 생명체 안에 있는 영 성품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한 조각, 우주 안에 있는 아버지)의 빛이 더욱 밝게 빛나면 빛날수록, 중간에서 활동하는 마음에 의하여 그 존재의 물질적 겉모습에 던져지는 그림자는 더욱더 커질 것이다. 시간의 생애 동안은, 인간의 몸은 마음이나 영처럼 꼭 같이 실제로 있는 것이지만, 죽음에 이르러서는, 마음(정체성)(identity)과 영 둘은 다시 살아나지만, 몸은 그러하지 아니한다. 우주의 실체는 성품존재의 경험 안에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 그리스 문명의 비유적인 표현인ㅡ물질은, 더욱 보다 사실적인 영의 본질이 만들어주는 그림자ㅡ라는 말은 철학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9.   개별 성품적인 실체들  ( Personal Realities )

  

   영은 우주에 있어서 기본적인 개별 성품의 실체이며, 그리고 성품은 영적인 실체를 가지고 진보과정에서 모든 것을 체험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 우주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지속적인 과정에서 성품존재가 겪는 모든 경험의 단계는, 매혹적인 성품의 실체들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들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참된 최종 목적은 새로운 영적 목표의 달성에 있으며, 그리하여 비물질적인 가치, 그러한 고귀한 목표인 우주적 매력에 화답하는 데 있다.


  사랑이란 성품존재들 사이에 서로 도움을 주면서 어울리는 연결의 신비이다. 당신들은 한 번의 접촉의 결과로 한 인간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당신들은, 음악이 비록 수학적 리듬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음악을 수학적 추론만으로 이를 감상할 수가 없다. 전화 가입자에게 배정된 번호는 그 가입자의 성격을 어떤 방법으로도 알 수 있게 하여 주지 않으며, 그의 특징과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도 알려주지 않는다.

   물질과학인 수학은, 우주의 물질적 측면을 논하는 지적인 토론에 있어서는 필수적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지식은 진리에 대한 높은 깨달음, 또는 영적인 실체에 대한 깊은 개인적 이해를 함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한 부분은 아니다. 인간의 세상살이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물리적 에너지의 세계에서도, 두 개 또는 여러 개의 합은, 그러한 모두를 더한 연합이 결과적으로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되는 합보다도, 훨씬 더 많거나, 아주 다른 것을  가져다주는 경우를 자주 겪게 된다. 수학의 모든 계산 능력, 철학의 모든 연구 영역, 물리학 또는 화학의 최고 수준일지라도, 두 개의 수소 가스 원자와 한 개의 산소 가스 원자가 서로 합쳤을 때, 새로운 하나의 질적으로 우수하게 더 향상된 본질을 가진 액체ㅡ물이 되리라고는 도저히 예견하거나 알 수가 없다. 이러한 물리 화학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지식만이라도 있다면 틀림없이 물질주의적인 철학과 기계론적인 우주학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분석은 사람이나 물건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밝혀주지 못한다. 예를 들면, 물은 불을 끄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물이 불을 소화(消火) 시킨다는 것은 일상 경험에 의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물을 아무리 분석하여도 결코 물의 그러한 성능을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분석을 하면 물이 수소와 산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만 내려준다. 이들 구성 요소에 대하여 연구를 더 하더라도, 산소는 연소를 지원하는 실질적인 것이며, 수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탈 수 있다는 것을 밝혀 줄 뿐이다.

  당신네들의 종교는 두려움의 노예와 미신의 굴레로부터 뛰쳐나오고 있기 때문에, 점차 현실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당신네들 철학은 독선과 전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투쟁을 하고 있다. 당신네들 과학은 추상의 속박, 수학의 노예, 기계적인 유물론의 상대적 맹목으로부터 구원을 얻으려고 투쟁을 하는 한편,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긴 세월 동안 논쟁에 빠져있다.


  유한한 인간은 하나의 영의 핵, 알맹이를 가지고 있다. 마음은 신성한 영의 핵 주위에 존재하면서, 물질적 환경 안에서 활동하는 개인적인-에너지 체제이다. 그러한 이 개인적인 마음과 영 사이의 생동하는 관계는, 우주에서 영원한 성품존재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주고 있다. 진정한 잘못, 끝없는 실망, 심각한 패배, 또는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은, 다만, 인간의 중심에서 그를 통제하는 힘인 영의 핵을 내쫓아 제거함으로, 성품존재의 정체성을 이루려는 우주적 계획을 파괴하는 잘못을 전적으로 추구하려는, 자기중심적 개념이 고착된 후에라야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 태초의 시절의 위임을 받아 활동하는 지혜의 완벽자가 제공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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