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우주와 대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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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 편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   

                     ( God's Relation to the Individual )

 

 

 

   우주 아버지가 인간 개개의 생명체와 가까이하기 위하여 무한한 완전 속에 있는 그의 영원한 거처로부터 아래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으로 얼마나 하나님이 위대하고 경외로운 존재인지를 만약 인간의 유한한 정신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러한 유한한 지능을 지닌 인간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실질적인 한 조각 편린이 정상적인 마음과 도덕적인 인식을 지닌 모든 유란시아 유한생명의 지능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의 진리를 근거로 인간이 신성한 하늘과 유대적인 관계(fellowship)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인간 안에 함께 살아가는 생각 조율자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영원한 신품의 한 부분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와 소통하기 위하여, 밖으로 멀리 가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더 깊은 안쪽에 있는 이 영적 실체의 존재와 영적으로 생각을 나누는 체험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그의 여섯 협력자들의** 실존적인 실체를 통하여 그의 영원한 성품인 무한함을 나누어 주고 계신다. 그러나, 그는 어느 경우라도, 생명체의 어떤 부분이나 단계나 종류에게도 그의 성품 이전적 성질의 조각인 이 매개체를 통하여 그들과 직접 개인적인 접촉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은 모든 우주에 있는 신성한 창조자들과 함께, 살아 있는 생명체들에게 성품을 내려줄 수 있는 특권을 또한 자신이 유보하여 지니고 계시며, 나아가 이러한 모든 개별적 존재들과 성품 회로를 통하여 직접 그리고 아버지로서 접촉을 유지하는 특권을 보유하고 계신다.



** 절대적인 그의 여섯 협력자들 (his six absolute co-ordinates) : 신품의 절대적인 존재는 일곱 겹의 신적존재들로 계시며, 따라서 여섯 협력자들이란 하나님을 제외한, 그의 아래로 파라다이스 창조자 아들까지 이르는 여섯 신적인 존재들을 의미함.

 

 

             1.  하나님에게로 다가감  ( The Approach to God )

 

 

  유한한 생명체가 무한한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은 아버지가 초연이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 창조된 존재의 유한함과 물질적 제한 때문으로서, 본성적으로 그러하다. 우주의 존재에 있어서 가장 높은 성품존재와 그리고 창조된 지성체 중 낮은 부류의 존재 사이에 있는 그 큰 영적 차이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만약 낮은 단계의 지성체가 순간적으로 하나님이 계신 그곳으로 바로 이동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분이 그 자리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지금 여기에 이대로 있는 것처럼, 그곳에서 우주 아버지가 계시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유한생명 인간이 우주 아버지가 계시는 파라다이스 안에서 일관되게 안전하게 행동하기를, 그리고 그럴 가능성을 바랄 수 있게 되기에는 아주 멀고도 먼 길이 그 앞에 놓여있다. 인간이 일곱 주재자 영들 가운데 어느 한 분을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려면, 아주 많은 횟수의 영적 변화를 거쳐야만 한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숨어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독선적으로 은거하여 계시지 않는다. 그는 그의 우주 영역에 있는 자녀들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결코 끊임이 없는 노력으로, 신성한 지혜의 자원을 동원하여 오셨다. 무한한 장엄함과 표현할 수 없는 관대함이 그의 위대한 사랑과 연관 지어져 있으며, 이는 그분으로 하여금, 모든 창조된 존재들이 그분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연결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유한생명의 상승 여행에서 그 목적지에 도달하여 모든 것들의 중심인 아버지의 존재 앞에 설 수 있는 시간과 장소와 환경을 결정하는 것은, 당신 자신 속에 근본적으로 있으며, 당신의 유한한 성품존재와 물질적 존재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당신 자신 안에 본래부터 있는 그 제한성에 달려있다.

 

  비록 아버지가 계시는 파라다이스로의 접근을, 당신의 영적 진보가 가장 높은 유한한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러나 당신은, 당신 내부의 영적 자기 자신인 혼과 그렇게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아버지가 내려 주신 영과 언제나 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는 이를 기뻐하여야 한다.

  시공간 영역에 있는 유한생명들은, 타고난 능력이나 지능적 재능이 서로 크게 다를 수 있으며, 그들이 사회적 진보와 도덕적 발전에 있어서 예외적으로 유리한 좋은 환경을 즐길 수도 있을 수도 있고, 혹은 그들이 문명의 예술에 있어서 문화와 그리고 예상했던 진보에 대하여 거의 모든 개인의 기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승 과정에서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영적 통찰력과 전 우주적 의미에 대한 이해 수준의 상승은, 진화하는 세계에서 모든 다양한 물질 환경들 사이에 주어지는 그런 사회적 도덕적 차이에 따라서 아주 독자적으로 서로 각각 다르게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유란시아 유한생명들은 그들의 지적, 사회적, 경제적, 심지어 도덕적 기회와 타고난 재능이 서로 다를 수는 있으나, 그들의 타고난 영적 특성은 모두 같으며 특별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들 모두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다 같은 선물인 신성한 존재를 즐기고 있으며, 이 함께 생활하는 신성한 기원의 영과 개인적인 친밀한 소통을 추구하는 특권을 다 같이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들은 이들 신비의 관조자들의 한결같은 영적 안내를 받아들이는 선택을 평등하게 같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 유한생명 인간이 한결같은 정성의 마음으로 영적으로 행동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전심으로 헌신을 다한다면, 그때는, 그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신성한 조율자에 의하여 아주 확실히 효과적으로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조금씩 더욱더 하나님처럼 되려는 진보적인 경험으로 하나님을 찾으려는 목적을 위하여, 그러한 개인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뛰어난 인식과 생존에 대한 확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생존을 이어가는 생각 조율자와 영적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만약 조율자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 마음이 성실하게 영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리고 그의 혼이 하나님을 알아서 그와 같이 되려고 갈망을 한다면, 그리고 정직하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러면 그렇게 신성하게 행동하는 혼이 파라다이스의 대문으로 안전하게 상승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는, 유한생명을 사라지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이나, 중간에서 방해를 일으킬 어떤 적극적인 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모든 그의 생명체들과 친히 소통하는 상태에 있기를 원한다. 그는, 생존을 계속하는 상태에 있는 영적인 본성들이 그러한 자격을 얻은 그러한 모든 생명체를 받아들이는 장소를 파라다이스 위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철학을 지금과 그리고 영원 안에 두어라. 당신들 각자와 우리들 모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분이며,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분으로서, 그 길은 열려 있다. 신성한 사랑의 힘과 신성한 질서 운영의 길과 방법은, 모든 우주에 있는 모든 값어치 있는 지성들이 우주 아버지가 계신 파라다이스로 향하여 전진하는 그들의 노력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모두 서로 맞물려 있다.  

  하나님에 이르기까지는 방대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무한함이 성품존재로서 존재함을 무엇보다도 더욱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당신들의 상승은 일곱 우주에 있는 회로의 일 부분이며, 그리고 비록 당신들이 그 주위를 셀 수 없이 많은 횟수로 회전을 할지라도, 당신들은 영적인 위상에 있어서 언제나 조금씩 안쪽으로 향하여 회전하고 있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한 영역에서 다음 영역으로, 밖의 외부 회로 보다는 내부 중심으로 더욱 가까이로 향하는, 변화하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고, 언젠가는 의심할 나위 없이, 당신들은 신성한 중앙에 계시는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을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영적 수준이 실제적이 되면서, 확실하게 그 수준에 도달하느냐의 문제이며, 그리고 그러한 영적 수준은 신비의 관조자와 함께 살아가면서, 결과적으로 그 생각 조율자와 영원한 융합을 이루는 자는 어느 누구 일지라도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영적으로 숨어 계시지 않으며, 다만 그의 많은 생명체들이 그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안개속으로 멀리 그 자신을 숨겨온 것이며, 이러한 동안은, 그들 스스로 비뚤어진 길을 선택함으로, 그리고 참을성 없는 마음과 비-영적인 성품으로 인한 자기주장에 빠짐으로, 그들 자신을 그 자신의 영과 하나님 아들의 영 사이의 소통으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나온 것이다. 유한생명 인간은, 선택의 능력이 남아 있는 한,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신성한 뜻을 여러 번 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마지막 운명은 아버지의 뜻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그 길이 막히지 않는다. 아버지의 가슴은 그의 자녀들이 필요로 하거나 청원을 하는 것에 대하여 결코 문을 닫지 않는다. 다만, 그의 자식들이 아버지가 이끄는 힘을 거슬러, 그들이 하나님의 신성한 뜻을ㅡ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 의지를 마침내 영원히 잃어버릴 때, 그들은 그들의 가슴을 영원히 닫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영원한 운명은, 상승자가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마지막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인, 조율자와의 융합을 우주에 대하여 선포할 때, 확실하여 진다.

  거룩한 하나님은 유한생명 인간과 직접적인 접촉을 통하여, 그의 무한하고 영원한 이해할 수 없는 그 자신의 한 부분을, 인간 안에 함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아래로 내려준다.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영원한 모험의 길을 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당신 자신과 당신 주위에 있는 영적 힘의 안내에 겸허히 따른다면, 공간의 진화 세계로부터 상승하는 생명체가 지닌 우주의 목적을,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에 의하여 마련된 높은 운명을 얻는데 있어서 결코 실패함이 없을 것이다.

 

      
            2.   하나님이 나타나 계심
  ( The Presence of God )

 

  무한함이 물리적으로 나타난 것이 물질 우주의 현실 실체이다. 신품이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개인의 지적 체험의 깊이와 진화하는 성품존재의 수준에 의하여 반드시 정하여 진다. 신성이 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주 안에서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생명체의 의지가 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의하여, 그리고 신성한 하늘의 의지를 행하기 위하여 바치는 헌신의 수준에 의하여 결정이 된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태어난 모든 그의 아들 각각 안에 살아 계신다.  파라다이스 아들들은 하나님이 계신 곳인, "아버지의 오른 편"에 항상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그리고 그의 모든 생명체 성품존재들은 "아버지의 품"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다. 이것은, 우주 아버지와 언제, 어디서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접촉이 되거나, 또는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스스로 의식적인 접촉이, 소통이 되는, 그리고 그것이 중앙 거처이든, 또는 파라다이스의 일곱 개의 신성한 영역 중 어느 하나에서 이든, 접촉이 가능한 성품 회로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성한 하나님이 나타나 계심은 자연 안의 어느 곳에서도, 또는 심지어 하나님을 알고 있는 유한생명의 생활 안에서도, 당신이 파라다이스생각 조율자와, 인간 안에 함께 살아가는 신비의 관조자와 하는 적극적인 교류에서처럼, 그렇게 완전하고 확실하게 발견될 수가 없다. 우주 아버지의 영이 당신 자신의 마음 안에 살아 계시는데, 멀리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이란 얼마나 잘못된 실수인가 !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의 분신인 이 조율자 때문에, 당신이 조율자의 영적 안내와 조화를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당신 주위에 있으면서 당신에게 영향을 주는 그러나 당신에게 필수적인 존재로서는 활동하고 있지 않는, 다른 여러 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있음과 그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을 당신이 보다 완전하게 알아보기를 희망할 수가 있다.
 당신이 함께 생활하는 조율자와 아주 가까우며 친밀한 접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능적으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적어도 그러한 영적 향상을 일으키는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신성한 조율자와 당신이 형제와 같은 관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를 믿는 개인의 인생 경험에서 얻어지는 영의 열매가 지닌 성질과 그 맺은 정도에 달려 있다. "그들의 열매로 너는 그들을 알게 되리라."

  아주 영적으로 미숙한 물질적인 유한생명 인간의 마음이, 파라다이스조율자와 같은 그러한 신성한 존재의 영적 활동을 뚜렷이 의식하는 경험을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마음과 조율자가 공동으로 창조한 혼이 차차 뚜렷이 존재하게 됨에 따라, 혼의 의식이 신비의 관조자가 존재함을 경험하게 되며, 또한 그가 영적으로 이끌어 줌과 그리고 그가 벌이는 다른 여러 가지 초-물질적인 활동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게 된다.

  조율자와 소통하는 모든 경험은 하나의 도덕적 위상, 정신적인 자극/동기, 영적인 체험이다. 자아실현인 그러한 성취는,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지만, 주로 영혼이 의식하는 영역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는 그렇게 내부의 영과 접촉하는 인간의 생활에서 맺는 영 열매의 발현으로 충분히 넉넉히 보여지게 된다.  

 



                    3.   참된 경배/숭배   ( True Worship )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파라다이스 신품존재들이 비록 하나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유란시아의 거주자 같은 존재와의 영적인 관계에서는 역시 뚜렷이 구별되는 세 분으로 분리되어 있는 각각의 분들이다. 개별적인 성품의 특징, 그들과의 소통, 다른 여러 가지 친밀한 관계에 있어서, 이들 신적존재의 머리들(Godheads +삼위일체의 세 분) 사이에는 서로 다른 점들이 있다. 가장 높은 의미로 볼 때, 우리는 우주 아버지 오직 그분 한 분만을 경배하고 숭배를 한다. 우리는 아버지가 그의 창조자 아들들로 모습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참으로 그를 숭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숭배될 수 있고, 찬미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지 한 분뿐이다.

  모든 종류의 간청은 영원한 아들과 그 아들의 영적 조직의 영역에 속한다. 모든 공식적인 소통인 기도는, 우주 아버지를 찬미하고 숭배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은, 지역 우주에 관련되는 사항이다. 이들 간청은 일반적으로 창조자 아들의 권한 영역 밖으로 벗어나서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숭배는 의심할 나위 없이 아버지의 성품 회로의 작용에 의하여 회로화되어 창조주 개인에게 보내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조율자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그러한 숭배의 기록을 올리는 것은, 아버지의 영이 나타나 모습을 보임에 의하여 도움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그러한 믿음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증거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리고 나는 모든 수준에 있는 아버지 분신들의 존재들이, 그들이 함께하는 주체들의 진실한 찬미를, 우주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서 받아들여지도록 등록을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알고 있다. 또한 조율자들은 하나님과 바로 교통을 하는 성품 이전적인 채널을 이용하며,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원한 아들의 영-인력 회로도 사용할 수가 있다.

  경배/숭배는 경배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 기도는 자신의 이익이나 생명체의 이익을 위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이 경배와 기도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이다. 참된 경배는 자기 자신을 위한 요구 또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요소는 절대적으로 들어있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이해하는 것 때문에 단순히 그분을 경배할 뿐이다. 경배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경배를 드리는 자신을 위하여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경배를 드림으로 인하여 어떤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 때문에 아버지를 경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버지의 비교할 수 없는 성품과 그의 사랑을 베푸는 본성과 찬양 받아 마땅한 여러 특성 때문에, 이들에 대하여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반응으로, 그러한 헌신을 드리고 그러한 경배를 올리는 것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한 요소가 경배에 잠입하는 순간, 그 순간의 봉헌은 경배로부터 기도로 바뀌며, 그리고 이 기도는 보다 적절한 대상인 영원한 아들 또는 창조자 아들 개인에게 당연히 향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종교 생활에서, 기도를 참된 경배의 한 부분으로서, 아버지하나님을 향하여 말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매일 실제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들과 부딪힐 때는, 세 번째 근원 중심에 근원을 둔 영 성품존재들의 관리 안에 있다; 합동 행위자 대리인들과 서로 협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하나님에게 경배를 올리고, 아들에게 기도를 하면서 그와 소통을 하고, 그리고 땅 위의 일상적인 구체적 일들은 당신들 세상과 우주에서 활동하는 무한한 영의 지성체들(intelligences)과 연계하여 해결하도록 노력하며 나아가게 된다.

 

  지역 우주의 운명을 주재하는 창조자 아들 또는 주권자 아들은, 우주 아버지파라다이스영원한 아들, 이들 두 분을 대신하는 위치에 있다. 이들 우주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 각각의 창조 세계에서 올라오는 숭배의 찬양을 받으며, 간청하는 탄원에 귀를 기울인다. 지역 우주의 자녀들에 대하여 아들 마이클은, 모든 실질적인 의도나 목적으로 볼 때, 그들에게는 이 아들이 하나님이다. 그는 우주 아버지영원한 아들이 지역 우주에서 성품화한 것이다. 무한한 은 이들 영역의 자녀들과, 우주의 영들 즉 행정력과 창조력을 가진 협력자인 파라다이스 창조자 아들을 통하여, 개별적인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진실된 숭배는, 진화하는 혼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그리고 서로 연계되어 있는 생각 조율자가 신성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성품존재가 갖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함을 의미한다. 제한되어 있는 물질 마음은, 참된 숭배의 진정한 의미를 결코 깊이 있게 인식할 수 없다. 인간이 숭배에 대한 경험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진화를 하여가는 그 자신의 불멸의 혼이 발전하는 수준 상태에 의하여 주로 결정이 된다. 혼의 영적 성장은, 지능적인 자아의식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숭배의 체험은, 인간과 약혼한 조율자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동경심으로 신성한 아버지와 소통하려는 숭고한 의도와,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인간 혼의 열망, 즉 하나님을 추구하는 유한생명 마음과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낸 불멸의 조율자가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창작물이다. 그러므로 숭배란, 물질적 마음이, 함께 노력하는 영의 도움 아래, 우주 아버지의 믿음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하여, 자신을 영성화하려는 의도에 대하여 찬성하는 행위이다. 유한생명 마음은 숭배에 동의한다; 불멸의 혼은 숭배를 간절히 원하여 이를 시작하려 한다; 신성한 조율자 존재는 유한생명 마음과 진화하는 불멸의 혼을 대신하여 그러한 숭배를 행하고 있다. 결국, 참된 숭배는 우주적인 네 단계에서 실현을 이루는 체험이 된다.; 지능적인, 모론시아적인, 영적인 그리고 성품적인ㅡ마음, 혼, 영의 의식/자각(意識/自覺 consciouness)이며, 리고 이들이 성품존재 안에서 하나로 통일이 는 것이다. 


              4 .   
종교에 있어서 하나님  ( God in Religion )


  
진화에 의한 종교의 도덕성은 두려움이 원동력이 되어 인간이 하나님을 추구하도록 유도하여 나아간다. 계시에 의한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을 추구하도록 인간을 유혹한다. 그러나 종교는 단순히 "절대적인 의존"과 "생존의 보장" 같은 수동적인 감정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봉사활동에 바탕을 둔, 신성을 획득하려는 생생하고 역동적인 경험이다.

  참된 종교가 주는 크고, 즉각적인 혜택은, 오래 지속되는 평화와 깊은 확신이, 인간의 경험 안에서 든든하게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원시적 인간에게는 다신교일지라도, 이는 신품에 대한 개념이 진화되어 서로 연관지어져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다신교란 일신교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멀지 않아서 하나님은 가치의 실체로서, 의미의 근본으로서, 진리의 생명으로서 이해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하나님은 운명의 결정자일 뿐만 아니다; 그는 인간의 영원한 목적지이다. 모든 비종교적인 인간의 활동은 자신을 잘못되게 하는 쪽으로 우주를 악용하려고 노력을 한다. 반면, 참된 종교인은 자신을 우주와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며, 그래서 이 하나로 된 자신의 활동이 동료 존재인 우주의 가족에게, 인간이나 높은 차원의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헌신하려고 노력을 한다. 

 철학과 예술의 영역은 인간 자신의 종교적 활동과 비종교적 활동 사이에서 이들을 조정을 한다. 물질적 마음으로 된 인간은 예술과 철학을 통하여 영적인 실체들과 영원한 의미의 우주 가치를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된다.

 모든 종교는 신품존재를 숭배하도록 그리고 인간 구원의 일정한 교리를 받들도록 가르치고 있다. 불교는 고통으로부터 구원과 끝없는 평화를 약속하며, 유대교는 고난으로부터 구원과 올바름에 바탕을 둔 번영을 약속하고, 그리스 종교는 미()의 실현으로 부조화와 추함으로부터 구원을 약속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죄로부터 구원과 신성함을 약속하며, 모하멛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엄격한 도덕적 기준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준다. 예수의 종교는 자신으로부터 구원인, 생명체가 시간 속에서 그리고 영원 안에서 격리되는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히브리인은 그들의 종교를 선에 기준을 두며, 그리스인은 미에 근거를 둔다. 그러나 둘 다 진리를 추구한다. 예수는 사랑의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었고, 그리고 사랑은 진리와 아름다움, 선함 모두를 감싸 안아준다.

조로아스터인은 도덕의 종교를 가졌으며, 힌두인은 형이상학의 종교이고, 공자의 유교는 윤리의 종교이다. 예수봉사  종교로 살았다. 이들 모든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향한 효과 있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종교는 인간 경험에 있어서 좋고 아름답고 참된 것들의 영적 통합의 실체가 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그리스 종교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표어가 있다. 히브리인은 모든 가르침을 "너의 하나님을 알라"에 중심을 두었다. 그리스도교인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목적을 둔 복음을 설교한다. 예수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복음과 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였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종교의 목적 개념은 다양한 형태의 생활 상황에서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며, 예배의 깊이와 개인적 기도 습관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 어떤 종교의 그 영적 상태는 그 기도의 성격에 의하여 결정될 수도 있다.


 
반쯤 인간적이어서 질투를 한다는 의 개념은 다신교로부터 뛰어난 일신교로 변하는 과정에 피할 수 없는 단계이다. 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보는 고양된 생각은 순수하게 진화하는 종교에 있어서 가장 높은 단계의 도달이다. 그리스도교는 이 인간과 의 동등화 개념으로 인간의 이상을, 영광스러운 분인 그리스도라는 초월적이고 신성한 개념까지 끌어올렸다.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개념은 다음 각각 다른 세 가지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고자 하는 시도이다.

 

    1.  히브리 개념 ㅡ도덕적 가치의 옹호자로서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

 

    2.  그리스적 개념 하나로 통일하는 자로서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3.  예수의 개념 ㅡ 살아있는 친구로서 하나님,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 신성한 존재

 

  따라서 여러 가지가 합쳐진 그리스도교 이론이 일관성을 유지함에는 당연히 대단한 어려움에 봉착한다는 것은 명확한 일이었다. 이 어려움은 더 나아가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각기 서로 다른 세 인물의 개인적인 체험에 기본적으로 바탕을 두게 됨으로써 더욱 심화되었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나사렛예수, 그리고 타르수스의 바울이었다.


 
예수의 종교적 생애에 대한 공부에 있어서 그를 긍정적으로 보아라. 그의 올바름과 사랑을 베푸는 봉사를 생각하면서, 그의 죄 없음에 너무 비중을 두지 말라. 예수는 히브리인들이 말하는 수동적인 사랑의 하늘 아버지의 개념으로부터, 모든 개인, 심지어 잘못을 저지른 자까지도 받아들이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더 활동적으로 생명체를 사랑하는 열정의 하나님으로 그 개념을 끌어올렸다.  
       

 

             5.   하나님에 대한 인식  ( The Consciousness of God )

 

  도덕심이란 이성(理性)이 자기 자신을 의식함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동물성을 초월하는 것이며, 그러나 전적으로 진화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조율자를 보내기에 앞서서, 그리고 진리의 영을 부어주기에 앞서서, 인간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모든 자질과 특성을 펼쳐 보이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도덕심을 갖는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이, 인간을 인간생활의 현실적인 투쟁으로부터 구제하지는 못한다. 육체를 지닌 인간의 환경은 존재를 하기 위한 싸움이 뒤따르며, 사회적 주변 여건은 도덕적인 조정을 필요로 하고, 도덕적 환경은 가장 높은 이성의 영역에서 선택하기를 요구하며, 영적인 경험은(하나님을 인식한) 인간이 그를 찾고 진실로 그와 같이 되기 위하여 애쓰기를 요구하게 된다.

  종교는 과학의 사실, 사회에 대한 책임, 철학적 추정, 또는 도덕이 요구하는 의무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있다. 종교는 생명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인간이 반응하는 독립적인 분야이며, 인간 발달의 모든 단계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며, 이는 도덕 다음의 단계이다. 종교는, 가치를 사실로 현실화하고 우주의 동료애를 즐기는, 다음 네 단계 모든 수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물리적 물질 단계, 동료애의 사회적 감정 단계, 이성의 도덕적 의무 단계, 하나님에 대한 숭배를 통하여 우주의 동료애를 인식하는 영적 단계, 이들 네 단계이다.

  사실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하나님첫 원인, 힘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 감정적인 예술가는 하나님을 아름다움의 이상, 심미의 하나님으로 본다. 이성적인 철학자는 때때로 우주의 통일인 하나님, 심지어 범신론적인 으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믿음의 종교인은 하나님을 생존을 이끌어 주는, 천국에 계신 아버지,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는다.

 

  도덕적 행위란 항상 진화되어온 종교에 앞서 있는 것이며, 그리고 종교의 일부, 심지어 계시로 내려온 종교의 일부는 될 수 있어도, 결코 종교적인 체험의 전부는 될 수가 없다. 사회적 봉사는 도덕적 사고와 종교적 생활의 결과이다. 도덕심이 종교적 체험의 더 높은 영적 단계로 생물학적으로 이끌어 주지 못한다. 추상적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는 하나님에 대한 숭배가 아니다. 또한 자연에 대한 고양된 마음이나, 통일성에 대한 경외의 정신도, 결코 하나님에 대한 숭배가 아니다.

  진화하는 종교는, 조율자의 내려보냄과 진리의 영이 내려옴을 받아들이고, 아울러 계시되는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인간을 향상시켜주는, 과학과 예술, 철학의 어머니이다. 인간 존재가 진화하는 모습의 그림은, 비록 종교의 성질이, 한 가지는 진화적이고 생물학적이며, 다른 한 가지는 계시적이고 주기적이어서 대단히 서로 다른 성질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로 시작하여 종교로 끝난다.  그러므로, 종교가 인간에게 정상적인 것이며 자연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면서 종교적이어서는 안 된다.

 

  본질적으로 영적인 종교적인 체험은, 물질적 마음이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신학의 활동도, 종교 심리학도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깨닫는 중심적인 교리는, 유한한 이해심으로서는 역설을 만들게 된다. 인간의 논리와 유한한 이성으로서는, 모든 각각 개개인의 일 부분으로써 그의 안에 있는 하나님하나님의 신성한 내재성의 개념과, 그리고 우주의 모든 우주를 하나님이 신성하게 지배하는 것, 초월을 이루는 하나님의 이념, 이 둘을 조화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품의 이 두 핵심적 개념은, 지적인 숭배심을 확실히 하고 성품존재가 지니는 생존의 희망을 유효하게 하기 위하여, 개별적인 성품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초월적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을 믿음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인 이 하나님의 한 조각에 대한 깨달음을 통하여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종교가 지닌 어려움과 역설은, 종교의 실체를 지성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완전히 인간의 능력 밖이라는 사실 때문에, 본래부터 그러한 것이다.

 

  유한생명 인간은 종교적 체험으로 인하여, 심지어 땅 위에서 일시적으로 지내는 기간 동안에도, 세 가지의 커다란 만족감을 얻는다 :

 

  1.  지성적으로, 그는 더욱 통일된 인간의 의식에 대한 만족감을 얻게 된다.


  2.  철학적으로, 그는 도덕적 가치의 이상이 현실로 실체화되는 것을 즐긴다.


  3.  영적으로, 그는 참된 숭배로 인한 영적 만족감으로, 하나님과 동반자적인 관계의 체험을 힘껏 누리게 된다.

 

  여러 영역에서 진화하는 유한생명이 경험하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반드시 세 가지의 다양한 요소들로서, 세 단계의 각각 다른 실체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마음으로의 인식ㅡ하나님이념 (idea)에 대한 이해이다. 그런 다음, 혼으로의 인식ㅡ하나님이상 (ideal)에 대한 깨달음이 뒤따른다. 마지막으로, 영으로의 인식ㅡ 하나님영 실체 (spirit reality)에 대한 깨달음이 서서히 눈을 뜨게 된다. 신성을 알게 되는 이러한 요소들이, 비록 아무리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로 합쳐지면, 유한한 인간 성품존재는 하나님성품  알게됨으로서, 언제든지 모든 의식의 단계 위로 모두 펼쳐지게 된다. 완결자 봉사단에 들어가게 되는 이들 유한생명 안에서, 시간이 지남과 함께 이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고위 (supremacy)를 알게 하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절한적으로 초월 인식하게 되는 어떤 단계인, 하나님의 궁극위 (ultimacy)를 깨닫게 하도록 이끌어 주게 된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체험은 세대에서 세대로 바뀌어도 변함이 없지만, 그러나 철학적 개념과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정의는, 인간의 지식에 있어서 앞으로 전진하는 세대와 함께, 반드시  변화하여야 한다. 종교적 인식인,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주의 실제적 현실이지만, 그러나 종교적 체험이 아무리 뚜렷하다고 하여도(사실적으로), 그것은 지성적 비평과 이성적인 철학의 해석에 기꺼이 복종하여야 한다; 반드시 그것은 인간 체험의 전체와 동떨어지는 어떤 것으로 추구하여서는 안 된다.

 

  성품존재의 영원한 생존은, 불멸의 혼이 생존할 가능성을 갖도록 선택하는 그의 결정에, 유한생명 마음의 선택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마음이 하나님을 믿고 혼이 하나님을 알 때, 그리고 그들이 그들을 돌보아 주는 조율자와 함께 하나님을 모두 열망할 때, 그때 생존이 확실하게 되는 것이다. 지능의 제한, 교육의 부족, 문화의 빈곤, 사회적 환경의 빈한, 심지어 불행스러운 교육, 문화, 사회적 혜택의 부족에 따른 인간 도덕 수준의 열등성이, 그러한 불행스럽고 인간적으로 불리함을 겪는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에게, 신성한 영의 존재가 그들에게 있게 되는 것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 신비의 관조자가 함께 살아감은 인간이 그의 자격을 얻어 생존을 시작하였음을 의미하며, 불멸의 혼이 가지고 있는 성장과 생존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하여주는 것이다.

  유한생명 부모가 번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그들의 교육이나 문화, 사회적 또는 경제적 상황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자연적 조건 아래 있는 부모들의 요소가 결합하는 것으로서 자식을 있게 하는데 아주 충분하다. 신성한 조율자와 결합하여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하나님을 숭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인간 마음 이것만이, 만약 영의 자질이 주어진 그 개인이 하나님을 추구하고 진실로 그와 같이 되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정직하게 이룩하기를 열망한다면, 유한생명이 그의 불멸의 혼을 생존하게 하는 자질을 생산하도록 시작하게 하고 계속 그것이 자라나도록 하는 데 요구되는 모든 것이다.

 

 

            
           6 .  성품존재이신 하나님  ( The God of Personality )

   우주 아버지는 성품존재들의 하나님이다. 가장 낮은 유한생명 물질 생명체 성품존재의 위상으로부터, 위엄과 신성을 갖춘 가장 높은 창조자 개별 존재들의 위상에까지 이르는 우주에 있는 성품존재의 영역은, 우주 아버지에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를 두르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개별 성품의 공여자이며 보존자이다. 그리하여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신성한 뜻을 행하기를 온 마음으로 선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동경하는, 이들 모든 유한한 성품존재들이 추구하여야 하는 최종 목적이 되어 있다.

 

  성품이란 우주에 있어서 풀리지 않는 신비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수준과 계층의 성품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요소들에 대한 적당한 개념을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그러나 성품 그 자체의 진정한 성질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함께 서로 합치면, 인간의 성품을 위한 운반체(vehicle)가 되는, 수많은 요소를 명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유한한 성품의 성질이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성품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조그만 존재로부터 하나님을 의식하는 최대로 높은 존재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특성과 자질을 지닌 모든 생명체 안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의 특성 자질 그것만으로, 또한 영이나 물리적 에너지만으로 성품이 되지 않는다. 성품은, 아버지 하나님 혼자 만에 의하여 물질, 마음, 영의 에너지가 서로 결합하고 협력하는 이들 생명 조직 체제 위에 주어지는, 우주적 실체 안에 있는 바로 그 성질이며 가치이다. 성품은 결코 진보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품은 물질적이거나 영적일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들 어디에도 성품이 없으며 성품이 아니다.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직접적인 행위에 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성품 아닌 다른 어떤 것도 결코 성품의 수준을 얻을 수가 없다.

  성품을 내려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창조를 하는 의식의 특성과 그에 따른 자유의지의 통제력을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에너지 조직을 우주 아버지가 성품화하는 것으로서, 이는 우주 아버지의 독점적인 기능이다.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서는 성품이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성품은 다만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 인간 자아의 기본적인 특성은 물론, 인간 성품존재의 핵심인 절대적 조율자도, 우주 아버지의 우주적 봉사를 위하여 그의 독점적인 성품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그분 우주 아버지가 내려주신 것이다.  

 

  성품 이전적 위상에 있는 조율자는, 수많은 형태의 유한생명 창조물 안에서 살고 있으며, 따라서 이와 같은 존재들은 유한생명이 그의 죽음으로부터 지고의 영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는 모론시아 생명체로 성품존재화가 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는 생존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장하여 주고 있다. 성품인 아버지가 성품 이전적인 존재를 주기 위하여, 성품이 주어진 그러한 생명체 마음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영의 한 조각을 함께 살아가도록 하였을 때, 그때 이 유한한 성품존재는 신성하게 되고 영원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며, 그리고 지고의 위치에 가깝게 가려는 목적을 열망하게 되며, 심지어 절대의 수준을 이루어 보려고 뻗어 나가려 하게 된다.

  신성한 성품존재가 될 수 있는 능력은 성품 이전적 존재인 조율자 안에 본래적으로 들어 있다; 인간이 성품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 존재에게 주어진 우주적 마음 안에 잠재적으로 들어 있다. 그러나, 경험을 하는 유한생명 인간의 성품존재는, 유한한 생명체의 물질 생명을 담고 있는 운반체가 우주 아버지의 생명을 자유롭게 하는 신성에 의하여 어루만져지고,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을 의식할 수 있게 되며, (상대적으로)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자기 스스로 창조적인 성품의 존재로서, 경험의 바다로 들어가게 되기 전까지는, 실제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실체로서 볼 수가 없다. 물질적 자아란 사실 아직 어떤 과정을 거쳐서 변환을 이루지 못한, 성품을 지닌 개체  (unqualifiedly personal)이다.

 

  물질적인 자아는 성품과 아울러 정체성(identity)을, 일시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성품 이전적인 영인 조율자도 역시 정체성을, 영원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 물질적인 성품존재와 이 영의 성품 이전적인 존재는, 불멸의 영혼이 생존을 할 수 있는 정체성을 지닌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창조적인 특성을 서로 합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불멸의 혼이 성장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 주었으며, 인간의 내부 자아를 이미 존재하여 내려오는 원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족쇄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신, 아버지는 옆으로 비껴서 계신다.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의 족쇄로부터 자유롭게 된 인간은, 적어도 영원한 목적지로 향한 운명에 관한 한, 불멸의 자아인 혼의 성장을 위한 여건들이 주어져 있으므로, 이제, 이 생존을 통하여 영원하여야 하는 자아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방해할 것인가는, 선택을 위하여 그의 것으로 있는 인간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 넓은 모든 우주 안에 있는 그 어떤 다른 존재나 힘, 창조자, 또는 매개자도, 인간의 자유의지의 절대적인 권리에 조금이라도 방해하려고 결코 끼어들 수가 없다. 왜냐면,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 성품존재의 영원한 목적지로 향한 운명에 관한 한, 이것은 선택이란 영역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존에 관하여 하나님은 물질 유한생명의 의지가 지니고 있는 고귀한 권리를 법으로 선포하였으며, 이 선포된 법은 절대적이다.

 

  생명체에게 성품을 내려주는 것은, 이미 존재하여 내려오는 원인들에 대하여 노예처럼 반응하는 것으로부터 상대적으로 해방하게 하여주며, 그리고, 그러한 모든 도덕적 존재의 성품존재들은, 이들이 진화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와는 상관없이, 우주 아버지의 성품 안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이들 성품존재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광활한 우주 안에서 가족으로서 모임을 이루게 하고 형제로서 교류를 하게 하는, 그들 존재들 사이의 친밀성에 의하여 파라다이스우주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언제나 이끌리어 가게 된다. 모든 성품존재 안에는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신성한 친밀성이 있다.

 

  모든 우주의 우주 안에 있는 성품 회로는 우주 아버지의 성품 개체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리고,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모든 수준에 있는 자아를 인식하는 존재들의 모든 성품들과 성품적으로 인식을 하며, 성품으로 접촉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생각 조율자만 하는 독립적인 임무이다.

 

  모든 중력이 파라다이스 섬 안으로 회로로 교류하듯이, 그리고 모든 마음은 합동 행위자 안으로 그리고 모든 영은 영원한 아들 안으로 회로로 교류하듯이, 모든 성품존재는 우주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계신 곳 안으로 그렇게 회로로 교류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교류에 의하여 모든 성품존재가 바치는 숭배의 정신이 그들의 본원적인 영원한 성품존재(Original and Eternal Personality)에게로 어김없이 보내어지고 전달이 된다.

 

   조율자와 함께 살지 않는 그러한 성품존재들에 관하여:  선택을 하는 자유의 특성 역시 우주 아버지에 의하여 주어져 있으며, 그리고 그러한 개체들도 마찬가지로 우주 아버지의 성품 회로인 위대한 신성의 사랑이 흐르는 회로의 품 안에 감싸여 있다. 하나님은 모든 참된 성품존재가 선택이라는 특권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성품을 지닌 어떤 생명체 일지라도 영원한 모험을 강요당할 수 없다; 영원으로 들어가는 현관은 다만, 자유의지인 하나님의 자유의지 아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에 호응하여 문이 열린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시간의 자녀들에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관계를 보여주려는 나의 노력을 말하여 준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말하고 이제 끝을 내면서, 나는 하나님은 당신들 우주의 아버지이며, 그리고 당신들 모두는 행성에 있는 그의 자녀라는 사실을 다시 말하는 것 이외에 더 도움의 말을 할 것이 없다.

 


 

 [ 이 글은 유버사신성한 조언자우주 아버지에 대하여 설명한 시리즈의 다섯 번째 마지막  글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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