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우주와 대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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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 편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관계

                                ( God's Relation to the Universe )

 

 

  우주 아버지는 우주들의 우주에 있어서 물질적, 지능적, 영적인 현상과 관련하여, 모든 시간에 걸쳐서 실행하고 계시는, 영원한 목표를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주를 그 자신의 자유롭고 주관적인 의지로 창조하였으며, 모든 면에서 지혜롭고 영원한 그의 목표에 따라서 창조하였다. 파라다이스 신품들과 그들과 연관된 가장 높은 동료들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에 관하여 정말 많이 아는 존재가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아주 높은 수준에 있는 파라다이스 시민들마저도 신품의 영원한 목표의 성격에 관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중앙우주 하보나를 창조한 목표는 순전히 신성한 하나님의 본성의 만족이라고 추정하기는 쉽다.  하보나는 다른 모든 우주들을 위하여 창조된 모범적인 원형으로서, 파라다이스로 향하는 과정에 있는 시간 속의 순례자들을 위한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학교로서 아마 운영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뛰어난 창조계도 근본적으로 완전하고 무한한 창조자의 기쁨과 만족을 위하여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진화하는 유한생명들을 완전하게 하고, 파라다이스에 도착하여 완결자 봉사단에 들어간 후,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떤 미래의 일들을 위하여 훈련을 계속 받도록 하는, 이들 놀라운 계획은, 현재로서는, 일곱 개의 대우주들과 그 아래 있는 수많은 하위 조직들의 가장 중요한 일들의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시공간의 유한생명을 영성화시키고 훈련하는 이 상승 계획이, 결코 우주의 지성존재들의 유일한 일거리가 아니다. 참으로, 하늘 무리들이 시간을 사용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다른 매력적인 추구할 일들이 많이 늘려있다. 

 



                     1.  우주에 대한 아버지의 자세 
                
( The Universe Attitude of the Father )

  

   유란시아의 거주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섭리를 잘못 이해하여 왔다. 당신네 세상에서 신성한 섭리의 일을 하고 계시지만,  많은 유한생명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분의 행위가 그렇게 유치하고, 제멋대로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명예와 그의 우주 자녀들의 영적 진보를 위하여, 우주의 법칙에 따라 중단 없이 일하고 있는 하늘 존재들과 신성한 영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는 것에 관련된 당신들의 생각이, 우주의 슬로건이 진보 (progress)라는 것을 알아보는 수준까지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인류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현재의 위치까지 도달하려고 투쟁을 하여왔다. 모든 이들 수많은 세월 동안 섭리(Providence)는 진보하는 진화의 계획을 수행하여 왔다. 실제에 있어서 두 가지의 생각(+ 하나님의 섭리와 진화 계획)이 서로 반대이지 않으며, 다만 인간의 잘못된 인식에서만 그러하다. 신성한 섭리는 세속적으로든 영적으로든, 결코 인류의 참된 진보에 대하여 반대의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섭리는 지고한 법제정자(Lawmaker)의 변함없고 완전한 성품과 항상 일치한다.

  "하나님은 정확하시며," 그리고 "모든 그의 계명은 정당하다." "그의 정확함은 바로 하늘에서 세워졌도다." "오,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말씀은 천국에 영원히 안주할 것입니다. 당신의 정확하심은 모든 세대에게로 향한 것입니다. 당신이 땅을 세우셨으며 그곳에 정확함이 살아있습니다." "그분은 정확한 창조주이시다." 

 

  아버지  그의 목적을 유지하고 그의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힘이나 성품에 있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영원한 하나님은 우리들의 피난처이며, 그 아래는 우리를 감싸주는 영원한 팔이로다." "가장 높은 분의 비밀스러운 장소에 살고 있는 그분은 마땅히 전능한 분의 그늘 아래 거주하실 것이로다." "보라, 우리를 지켜주는 그분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영원히 함께 일함을 우리는 아노라." "왜냐면 천주의 눈은 올바름 위에 있으며, 그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로 열려 있음이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의 능력의 말로서" 관리 유지하신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생겨날 때는, 그는 "그의 아들들을 앞으로 내보내며, 그리하여 세상이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창조를 할 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를 보호하신다." 하나님은 물질적인 모든 것과 영적인 모든 존재들을 끊임없이 관리 유지하신다. 우주는 영원히 안정되어 있다.  겉으로 불안정함 가운데 안정이 있다. 무수한 별들의 세계에서 에너지의 격변과 물리적인 대변동이 일어나는 그 속에 근원적인 질서와 안정이 있다.

  우주 아버지는 우주의 경영으로부터 물러나지 않았다 ;  그는 비활동적인 신품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모든 창조에 대한 현재와 같은 유지자의 위치에서 은퇴하여야만 한다면, 당장 우주의 붕괴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하나님 같은 그러한 실체 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까마득한 과거로 부터 내려온 것처럼 영원한 미래에도, 하나님은 관리 유지하심을 지속하신다.  하나님의 신성은 영원한 수레바퀴의 주변에 이르기까지 뻗어나간다. 우주는 얼마간 움직이다가 그 작동을 멈추는 시계처럼 그렇게 감겨져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아버지는 쉼 없이 에너지와 빛, 생명을 앞으로 쏟아내신다. 하나님의 작업은 실질적이며 영적이시다. "그는 북쪽을 빈 공간으로 뻗어 늘이시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 이 땅을 매달아 놓으신다." 

 

   내 수준의 존재는 우주 행정의 일상적인 일에서 지고한 조화를 발견할 수 있으며, 아주 멀리 그리고 아주 깊이 서로 협력함을 알아볼 수 있다. 유한생명 마음에게는 서로 분리되어 있고 무계획적인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나에게는 질서 있고 건설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우주에는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진행사항들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지역우주와 대우주에 있는 이미 인식된 힘과 에너지, 마음, 모론시아, 영, 그리고 성품에 대하여 공부하여 왔으며, 어느 정도는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러한 매개체들이나 성품존재들이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대하여 대체적인 이해를 하고 있으며, 그리고 거대우주에서 인정받은 영 지성체들이 하는 일을 아주 친숙히 알고 있다. 우주의 현상에 대한 나의 이러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충분히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반응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힘과 에너지, 지성체, 영들이 서로 연합하는 것과 같은 우연히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계속해서 분명하게 마주치고 있으며, 그러나 이들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우주 아버지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 그리고 크게 확대하여 파라다이스 섬의 활동의 결과로 인하여 바로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대하여 추적하고 분석하는 일에 있어서 완전히 자신이 있다.  나는 가끔, 잠재성을 갖고 있는 세 분 절대, 즉 신비의 상호 협력자들의 행위로 보이는 것들과 마주치면 아주 당황하게 된다. 이들 절대들은 사물을 아예 없는 듯 상관하지 않으며, 마음을 초월하고, 영에 대해서는 함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복잡한 상관관계들을, 이들을 나는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 신품 절대, 그리고 우주 절대의 나타남이나 행위로 추정하는데,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혼란을 겪으며 아주 자주 당황하게 된다.

   이들 절대들은 틀림없이 우주 밖으로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상태이며, 그리고, 이는 물리학자들이나 철학가, 심지어 종교가들마저도, 힘의 근원, 개념, 또는 영이, 잠재성을 가진 공간에서의 현상에 있어서 또는 다른 초-궁극자(superultimates)들의 활동에 있어서, 최고의 조정과 지고의 가치가 포함된, 복합적인 실체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요구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하여, 확실하게 예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시공간의 우주에는 또한,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의 구조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단일화된 유기적 체계가 있다.  진화하는 지고의 존재가 이렇게 생동적으로 계심은, 이 투사된 미완성의 내재성(內在性)은** 명확하게 서로 상관없는 우주의 무계획적인 일들이 놀랍게도 우연히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때때로 이해가 잘 되지 않게 나타난다.  이것은 틀림없이, 지고의 존재합동 행위자의 영역인, 섭리의 작용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변화무상하며 명확하게 절망적으로 혼란스러운 뒤섞임들인, 물리적, 정신적, 도덕적, 영적 현상들이, 그렇게 실수없이 인간과 천사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기 위하여 작용하도록 하는 것은,  이 멀리 뻗어나가는 일반적으로 알지 못하는, 모든 단계와 형태의 우주의 활동이 서로 조화를 하고 상호 협조함에 의한 통제 관리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우주에서 발생하는 눈으로 보기에 "우연한 사건들"도, 의심의 여지 없이 ,무한이 절대들을 움직이는 그의 영원한 운용인, 시공간에서 벌이는 모험의 유한한 드라마의 일부이다.


**  투사(投射)된 미완성의 내재성(內在性) (
Immanence of the Projected Incomplete) : 파라다이스가 지닌 원형적 형태가 우주로 투사되어 나온 것이 현재의 우주로서 이것은 아직 완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며, 그러나 그 안에는 완전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함. 



                    2.   하나님과 자연  ( God and Nature )

  

   자연이란 제한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물리적으로 행하는 습관이다.  하나님의 행위, 또는 활동은, 어떤 과정을 통과하여 나타나며 그리고 지역우주나 성단, 체제, 또는 한 행성의 실험적 계획이나 진화적 형태에 맞추어 잠정적으로 조정이 된다.  하나님은, 전우주에 걸쳐서 널리 적용되는, 명확하고, 변경이 없으며, 변화하지 않는 법에 따라서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는 각각의 우주, 성단, 체제, 행성, 그리고 성품존재들이, 그 지역의 목적, 목표, 그리고 진화에 따라 펼치는 유한한 사업의 계획에 호응하여, 서로 도우며 조화를 이루는 행위를 하는데 기여하기 위하여 그의 행동의 형태를 수정 변경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유한생명 인간이 이해하듯이 자연은, 변하지 않는 신품과 그의 불변의 법들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바탕과 기본적인 배경을 나타내며, 그 법들은 지역의 계획과 목적, 형태, 조건들에 따라서, 지역우주, 성단, 체제, 행성의 원력과 성품존재들에 의하여 시작되어 진행 추진되어온, 여러 일들에 의하여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영향을 받음에 따라서, 수정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법들이 네바돈에서 시행된 후, 이 지역우주의 창조자 아들창조의 영에 의하여 수립된 계획에 의하여 수정 변경되었으며, 그리고 이에 덧붙여 이들 법의 운용은 당신네들 행성에 거주하며, 당신네들 바로 위의 행성 체제인 사타니아에 속하는 어떤 존재의 실수와 오류, 배반에 의하여 한번 더 영향을 받았었다.

 

   자연은 우주의 두 요소에 의하여 시공간에 펼쳐진 하나의 결과물이다. 첫째는 파라다이스 신품의 불변성, 완전성, 그리고 올바름이며, 둘째는 가장 높은 존재로부터 가장 낮은 존재에 이르기까지 파라다이스의 생명체들 이외의 많은 존재들이 저지른, 실험적인 계획, 시행상의 실수, 배반으로 인한 잘못, 발전의 미완성, 그리고 지혜의 불완전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영원의 수레바퀴에서 풀어져 나오는 통일되고, 변함이 없으며,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하나의 완전한 실 가닥(絲 thread)이다. 그러나, 자연은 각각의 우주와 행성, 개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진화하는 단위 체제나 우주의 생명체들의 어떤 행위나 실수, 불성실에 의하여 수정되고, 정리되며, 어떤 때는 훼손된다. 그리고, 자연은 그러므로, 비록 그 바탕은 안정적이면서, 지역우주의 운용 절차에 따라서 변화를 하지만, 그 모습은 반드시 변화하는 성질, 종잡을 수 없는 변화무상함이다. 

    자연은 미완성과 악,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우주의 죄에 의하여 분리된,  파라다이스의 완전함이다. 그러므로 이 분리 비율은 완전과 부분 완전, 영원과 일시적인 것, 두 가지를 표현한 것이다. 계속 진행되는 진화는,  파라다이스의 완전함의 용량을 확대시킴으로써, 그리고 악과 실수, 상대적인 실체들의 비조화의 용량을 줄임으로서, 자연을 수정하고 변화시킨다.

 

   하나님은 자연 속에 또는 자연의 어떤 힘 속에서도 개인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면, 자연 현상은, 하나님의 우주 법칙인 파라다이스의 바탕 위에, 진행 중인 진화의 불완전함과 또한 때때로 배반에 의한 반란의 결과가 그 위에 겹친 것이기 때문이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결코 자연은 모든 면에서 지혜롭고 무한한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는 적절한 표현이나, 참다운 반영, 성실한 면모일 수가 없다.

   당신네들 세계에서의 자연은, 지역우주의 진화 계획에 의하여 마련된 완전한 법칙의 검증 과정을 거친 것이다. 제한되고 한정된 관점에서 보면, 자연이 하나님에 의하여 충만하게 되어 있고, 또한 우주 전체적이어서, 따라서 신성한 하나님의 능력의 한 모습이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자연을 숭배한다는 것은 얼마나 희극적인 일인가! 자연은 역시, 진화 우주에 있어서 발전하고, 성장하며, 진보하는 우주 실험의, 미완성이며, 미종결인, 불완전한 작품이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자연 세계의 명확한 결점들이 하나님의 성품에 있어서 그에 상응하는 결점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보다는, 그러한 불완전함은, 무한함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하여 계속하여 돌아가는 물레가 그 운행을 밖으로 나타내 보여줌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순간적으로 잠깐 정지하는 순간에 불과하다. 물질 인간의 유한한 마음이 시공간의 세계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신성한 실체의 한 모습을 잡아 볼 수 있게 하여주는 것은, 완전함의 연속성이 결점으로 인하여 잠깐 단절하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이다. 신성의 물질적 발현이 진화하는 인간의 마음에 결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다만 유한생명 인간이 자연의 현상을 모론시아의 모타**나, 또는 시간에 얽매인 세상에 대한 보상으로 보충해주는 계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연의 눈과 인간의 관점으로 보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은, 자연의 한 부분이면서 그러나 세월 속에서 그를 아프게 한, 수 많은 생명체들의 반역과 비행, 잘못된 생각에 의하여 훼손됐으며, 그리하여 그 아름다운 얼굴은 흉터가 졌고, 그 모습은 황폐해져 있다. 아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아니다. 자연은 우러러 볼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 모론시아의 모타 (morontia mota) : 물질과 영 사이 중간 차원인 모론시아 세상의 지혜. 높은 수준의 지혜. ( 참조 48 :. 7 )

 


       3.  하나님변하지 않는 성격  ( God's Unchanging Character )


   너무나 오랫동안 인간은 하나님을 자신과 같을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하나님은 우주의 어느 우주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인간이나 다른 존재를 질투하거나 시샘하지 아니하며, 결코 하지 않았으며, 또한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창조자 아들이 인간을 행성 창조의 걸작품으로, 땅 위의 모든 것의 지배자가 되도록 창조한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인간 자신의 아주 낮은 수준의 감정에 지배당한 존재들의 모습, 그리고 나무, 돌, 금, 이기적 욕망 앞에 엎드려 절하는 존재들의 광경, 이러한 비천한 장면들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들이 인간을 위하여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갖도록 자극할지는 몰라도,  결코 인간에 대하여 질투를 하도록 하게 하지는 못한다.

   영원한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감정으로 분노하고 화를 내는 반응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분노하거나 화를 낼 수가 없다. 이러한 감정은 비천하고 비열한 것이며, 신성과는 거리가 멀고, 인간적이라고도 부를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우주 아버지의 완전한 본성과 고상한 성품과는 전적으로 성질이 맞지 않는 것이다.

   유란시아의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아주 대단히 어려운 까닭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루시퍼의 반란과 칼리가스티아의 배반의 결과 때문이다. 죄에 의하여 격리되지 않은 세상에 살고있는 진화 과정의 종족들은 우주 아버지에 대하여 훨씬 좋은 관념을 형성할 수가 있다; 그들은 개념의 혼란과 왜곡, 도착에 의한 고통을 훨씬 적게 겪는다.

 

   하나님은 그가 한 것이나, 하고 있는 것이나, 앞으로 할 어떤 일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면에서 현명할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 인간의 지혜는 인간 경험의 시험과 실수로부터 성장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주에 대한 그의 무한한 통찰력에 따른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완전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고 이 신성한 예지력은 창조에 연관된 자유 의지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우주 아버지는 결과적으로 슬픔과 후회를 일으킬 어떤 일도 결코 하지 않지만, 그러나, 전개 되고 있는 우주 안에서 그의 창조자 성품존재들이 계획하여 만들고 있는 의지 생명체들이, 그들이 불행한 선택을 함으로 해서, 그들의 창조자 부모들의 성품존재 안에 신성한 하나님의 슬픈 감정이 일어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아버지는 실수를 하지 않고, 후회를 품지 않으며, 슬픔을 경험하지 않지만, 그는 아버지로서 애정을 지닌 존재이며, 따라서 그의 마음은 그의 자녀들이, 우주의 영적 성취 계획과 유한생명 상승 정책에 있어서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도움을 받으면서 도달할 수 있는 영적인 단계에 이르는 것을 그들이 실패하였을 때, 의심할 여지없이 슬픔을 느낀다.

  아버지의 무한한 선함은 시간 안에 있는 유한한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서 있다. 그러므로 모든 단계의 상대적인 선함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항상 그에 비교되는 악함(죄가 아니고)이 대조적으로 주어져야만 한다. 신성한 하나님의 완전한 선함은, 움직이고 있는 공간 안에 있는 시간과 물질의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인 불완전함과 대조적인 연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유한생명의 불완전한 통찰력에 의하여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격은 무한하게 초-인간적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신성의 본성은,  그것이 인간의 유한한 마음에 의하여 심지어 신념으로-알게 되기 전에, 신성한 여러 아들 안에서처럼, 반드시 성품존재화를 이루어야 한다.

 


           4.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  ( The Realization of God )

 

   하나님은 이 우주의 우주에 있어서 오직 한 곳에 고정적으로 계시며, 스스로 그 안에 모든 것을 함유하고 계시면서 변화를 하지 않는 존재로서, 그로부터 외부로 어떠한 밖이 존재하고 있거나, 그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거나, 아무런 과거나 미래를 가지고 있지 않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목적을 지닌 에너지(창조적 영)이며, 절대적 의지이고, 그리고 이것들은 스스로 존재하면서 우주 전반에 걸쳐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의 정체성 그것은 변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 천주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불변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파라다이스의 경지에 도달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여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한 가지에서 여러 가지로, 조용함에서 움직임으로, 무한함에서 유한함으로, 신성에서 인간성으로, 유일성에서 이중성과 삼중성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자신의 절대성을 나타내는 모습을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신성의 불변성이라는 것이 부동성(不動性)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의지 그 자체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절대적인 판단과 결심을 하는 존재이다. 우주적인 일에 대하여 그가 반응하는 행동에는, 스스로 그렇게 지키도록 만든 것들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아무런 제한이 없다. 그리고 그의 자유의지 행위는, 그의 영원한 성품을 본성적으로 갖고 있는 신성한 성품을 지닌 것들이나 완전성을 지닌 것들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주에 대하여 창조적인 무한함을 지닌 자유의지이며 아울러 최종적인 선함을 지닌 존재로, 연관 지어져 있다.

  절대이신- 아버지는 중앙에 있는 완전한 우주의 창조주이며, 그리고 모든 다른 창조자들아버지이다. 하나님은 개성적인 성품, 선함, 그리고 수많은 특성들을 인간과 다른 모든 존재들과 나누어 가지지만, 무한한 의지만은 그분 홀로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는 그의 영원한 본성이 갖는 감성과 그의 무한한 지혜의 지시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다.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한 것만을, 따라서 중앙우주의 초월적으로 완전한 것만을 개인적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창조자 아들들은 하나님의 신성을, 심지어 하나님의 절대적 수준마저도 충분히 나누어 가지지만,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무한한 의지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지혜에 의하여, 함께 제한을 받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러므로, 마이클 수준의 아들에게는 창조적 자유의지가, 더욱 활동적이고, 전적으로 신성하며, 만약 절대에 이르지 않았다면, 거의 궁극에 이른다.  아버지는 무한하고 영원하지만, 그러나 그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적 절대성의 바로 그 개념을 부인하는 것과 같게 된다. 

 

  하나님의 절대성은 일곱 단계의 모든 우주 실체에게 두루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이 절대적인 본성의 전체는, 창조자와 창조된 그의 우주 가족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정밀함은 모든 우주에 있어서 삼위일체적인 정의의 특성을 말해줄지 모르지만, 그러나 시간 속의 생명체와 그의 광활한 모든 가족 관계에 있어서는, 우주의 하나님신성한 감성 (divine sentiment)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 처음이며 마지막인, 영원하게 무한한 하나님은 한 분 아버지 이다. 나는, 그분을 적절하게 알릴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이름들 중에서, 모든 창조의 하나님 그분을 우주 아버지로 표현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아버지이신 하나님 안에서, 자유의지 행위는 능력에 의하여 다스려지지 않으며, 또한 지능 하나만에 의해서도 안내되지 않는다 ; 신성한 성품은 영(spirit) 안에서 형성되며, 우주에 대하여 그 자신을 사랑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주 안에 있는 창조물인 성품존재들과의 모든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 첫 근원 중심은 항상 그리고 언제나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이다. 하나님을 가장 높은 경지의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버지이다. 그는 완전한 이상인 신성한 사랑에 의하여 생동을 일으키는 자극을 영원히 받으며, 그리고 그 부드러운 성품은 이 성품의 가장 강력한 표현과 가장 큰 만족을, 사랑을 베풂과 그리고 사랑을 받음에서 발견을 한다.

 

  하나님은 과학적으로는 첫 근원이다 ; 종교에 있어서는 우주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이다 ; 철학적으로는 존재를 위하여 다른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그는 모든 것들과 그리고 다른 모든 존재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실체를 너그럽게 베푸는 그런 존재이다. 그러나, 이는 과학의 첫 근원이며 그리고 철학의 스스로 존재하는 단일체(Unity)가, 자비와 선함으로 가득하며, 그의 자녀들이 땅 위에서 영원히 생존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한, 종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 모습을 드러냄이 요구된다.

  우리는 무한이라는 개념을 정말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품에 대한 우리의 가장 높은 개념인 성품과 신성의 요소들을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라도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하나님에 대한 체험-생각을 높이 우러러본다.

  땅 위에서 승리를 거두는 인간 생애의 의식은, 인간의 한계를 가늠하는 끔찍한 광경과 직면하게 되었을 때, 존재와 연관되어 일어나는 사건 때마다, 한결같은 선언으로, 감히 도전하는 생명체의 신념에서 태어난다. 비록 내가 이것을 할 수 없을지라도, 모든 우주의 절대이신-아버지의 한 부분, 그것을 할 수 있고 하려고 하는 한 분이 내 안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심지어 너의 신념까지도 극복하는 승리"이다.

 


        5.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 ( Erroneous Ideas of God )

   종교적 전통이란, 오래전 시대에 하나님을 알았던 인간의 경험을 불완전하게 보존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기록은 종교적 생활을 위한 안내서로서나, 우주 아버지에 대한 참된 지식의 근원으로서는 믿을 만한 가치가 없다. 원시적 인간들이 신화를 만든 사람들이란 사실 때문에, 그러한 고대의 믿음은 예외없이 바뀌고 개조되었다.

  
유란시아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혼란 중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당신들이 신성하다고 말하는 책들이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성품존재들과 파라다이스 신품 사이를, 그리고 지역 우주 창조자와 관리자들 사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한 실책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부분적인 이해가 가능했던 과거의 섭리 기간 동안에, 당신네들의 성직자와 예언자들은 행성영주들, 체제 주권자들, 성단 아버지들, 아들 창조자들, 대우주 통치자들, 지고의 존재, 그리고 이들과 우주 아버지 사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였다. 생명 운반자들과 여러 계급의 천사들과 같은 지위가 낮은 성품존재들이 말한 많은 메시지가 당신들 기록에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처럼 나타나 있다. 유란시아인의 종교적인 생각은 신품존재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돕는 여러 성품존재들과 우주 아버지를 여전히 구분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면서, 이들 모두가 한 이름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유란시아 인간들은 하나님에 대한 원시적인 개념의 영향으로 계속 고통을 받고 있다. 폭풍 속에서 날뛰는 신들, 분노로 땅을 마구 흔들고 화가 나서 인간을 내려치는 신들,  불쾌함에 대한 심판으로 기근과 홍수로 형벌을 내리는 신들, 이것이 원시 종교의 신들(gods)이었다. 그들은 우주에서 살며 우주를 다스리는 신적 존재들(Gods)이** 아니다. 그러한 개념은 우주가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신들의 변덕스러운 보호와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의 유물이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들도 지고의 창조자들과 지고의 통제자들의 운영 방침과 규율에 관련하여서는, 비교적 법과 질서의 영역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분노한 하나님을 달래려는, 기분이 상한 천주의 비위를 맞추려는, 그리고 심지어 피를 뿌리는 희생 제물과 고행으로 신품존재의 호의를 얻으려는 이들 야만적인 생각은, 종교가 철저히 미숙하고 원시적이며, 과학과 진리로 각성한 시대에게 가치없는 철학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믿음은 우주에서 봉사하고 관리하는 천상의 존재와 신성한 지배자들에게는 정말 불쾌한 것이다. 거짓으로 꾸며낸 하나님의 분노를 풀어드리고, 그의 환심을 사려고 죄 없는 피를 흘려야만 한다고 믿고 고집하며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히브리인들은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라고 믿었다. 비록 모세가 어린애 같은 원시적 정신의 베두인족 추종자들에게 인간 희생물을 금하고 동물 축제 희생물로 대체하도록 함으로써 큰 진전을 이루었으나, 신적 존재은 피를 보지 않고는 달래지지 않는다는 고루하고 우상 숭배적 생각으로부터 그들은 벗어나지 못하였다.

  당신들의 세상에 파라다이스 아들을 내려보냄은 행성이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는 상황에서는 본래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결코 하나님이 호의를 얻어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다.  아들 창조자에게도 또한 이 내려옴은 그의 우주에서 경험을 통한 통치권을 얻으려는 긴 모험에 있어서 마지막 개인적인 행위로서 일어난 것이다.  무한한 성품의 하나님에게 이 얼마나 잘못된 희작(戱作. 희극적 작품)인가!  아무 잘못이 없는 그의 아들이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는 것을 보지 않고는 그의 부드러운 자비를 내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그의 피조 생명들의 불운과 슬픔으로도, 지독한 냉정과 완고함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 가르침이야말로 얼마나 잘못된 희작인가!  

  그러나 유란시아의 거주자들은 우주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고대의 잘못과 우상숭배적인 미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의 계시가 나타나며, 그리고 인류는 사람의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란시아에서 삶을 보낸 창조자 아들의 훌륭한 행적으로 인하여, 우주 아버지의 모든 아름다운 성품과 사랑의 속성을 마침내 알도록 운명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  신적존재들(Gods) : 하나님을 포함한 삼위일체로부터, 지고의 존재, 주재자 영, 태초의 시절, 그리고 지역우주 창조자 아들에까지 이르는, 일곱 겹으로 계시는 신적 존재들을 말하며, 이 경우는 영어 대문자 Gods 로 표현하였으며, 한편 유란시아 책은 인간이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온갖 잡신은 소문자 gods로 표기하여 그 의미를 구분하였음.


   [  유버사신성한 조언자가 제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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