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우주와 대우주

HOME > 유란시아서 본문 > 번역 > 중앙우주와 대우주

           

         제 3 편      하나님의 속성  ( The Attribute of God )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신다. 우주의 아버지는 영원한 순환을 다스리신다. 그러나, 그는 여러 지역우주 안에서 그의 파라다이스 창조자 아들 개개인을 통하여 다스리시며, 이들 아들을 통하여 생명을 내려보내기까지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며, 이 생명은 그의 아들 안에 있도다." 이들 하나님창조자 아들은, 시간의 영역 안에서 그리고 진화하는 공간의 우주 안에서 선회하고 있는 행성의 자녀들에게, 그 자신을 개별적인 성품의 존재로써 표현한 것이다.
  
낮은 수준으로 창조된 지성존재들은 이들 대단히 높은 수준에 있는 성품존재화가 된 창조자 아들을 명확하게 구별하여 알아볼 수가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함을 그들이 직접 바라볼 수 없음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조금 밖에 알아볼 수 없음을, 이렇게 함으로써 보완하여 주게 된다.  우주 아버지파라다이스 창조자 아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그의 존재를 이렇게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며, 그는 영원한 순환과 파라다이스 신품의 성품존재들 안에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절대성과 무한성 때문에 직접 바로 드러내 보여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창조주의 창조성을 하나님의 속성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그가 행동하는 본성을 집약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보다 가깝다. 그리고 이 창조성이 우주에서 벌이는 활동은, 이것이 첫째 근원 중심의 무한성과 신성한 실체가 지닌 서로 협조하는 모든 속성에 의하여 조절되고 통제 관리되기 때문에, 영원히 발현된다. 우리는 신성한 본성의 어느 한가지 특성이라도 다른 본성들 보다 미리 앞서 있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참으로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만약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면, 신품이 지닌 창조를 위한 본성은 모든 다른 본성이나, 활동과 속성들에 대하여 우선적일 것이다. 그리고, 신품의 이 창조성은 하나님아버지(the Fatherhood)라는 우주적인 진리를 가장 높이 올려주고 있다.




    1.   어느 곳에나 계시는 하나님  (God's Everywhereness )

 


    우주의 아버지가 모든 곳에, 그리고 그 모든 곳에 동시에 계실 수 있는 능력은 그가 어디에나 계실 수 있는 편재성(遍在性 omnipresence)을 갖게 하여 준다.  하나님은 그분 홀로, 두 곳에 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있을 수 있다.  성경 시편을 지은이가 " 당신의 영으로부터 내가 어디로 가야 하리이까 ? 당신으로부터 내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으리이까 ?"라고 크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저 높은 하늘에도 그리고 낮은 땅 위에도" 동시에 계신다.

천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바로 네 곁에도 그리고 저 멀리도 있는 하나님이니라. 하늘과 땅을 내가 채우지 않았느냐 ?" 우주의 아버지는 멀리 뻗어나가는 그의 창조계 안에서 모든 부분에 그리고 모든 마음 안에 언제나 계시는 분이다. 그는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 안에 차 있는 충만함이며", 그리고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 분이며", 더 나아가 그의 성품이라는 개념은 "하늘(우주)과 하늘 중의 하늘(우주들 중의 우주)이 그를 담지 못하는" 그러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전부 가 아니다. 무한함이란 단지 무한에 이르러서야  마지막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원인이란 결코 결과의 분석으로 완전히 이해될 수가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아무런 제약 없는 그의 창조 행위의 결과로 존재하게 된 모든 창조의 전체보다도 헤아릴 수 없이 더 크시다. 하나님은 우주를 통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우주는 결코 하나님의 무한성의 전부를 다 담을 수도 감쌀 수도 없다.

   아버지의 존재는 끊어짐이 없이 전체 우주를 둘러보신다. " 그분의 나아감은 하늘 끝으로부터 이며, 그분의 돌아옴은 하늘의 끝까지 이니라. 그리고 아무것도 그곳의 빛으로부터 숨을 수가 없도다."

 

생명체가 하나님 안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역시 생명체 안에 살고 있다. " 우리는 그가 우리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그의 영을 주시었다. 파라다이스 아버지로부터 주어진 이 선물은 인간에게 떼내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다." "그는 항상 함께 있으며 모두에게 골고루 찾아드는 하나님이다." "영구한 아버지의 영은 모든 유한생명 어린아이 마음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인간은 친구를 찾으러 앞으로 나아가며, 반면 바로 그 친구는 그 자신의 가슴 안에 살고 있다." "참된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는 우리의 한 부분이고, 그의 영은 우리의 안으로부터 말을 한다." "아버지는 어린아이 안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그는 영원한 목적을 향하여 안내하는 영이시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 안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가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인류에게 말해져 내려온 것은 옳은 말이다. 너희가 잘못을 행함까지도 너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괴롭히는 것이며, 이는 생각 조율자가, 그가 그 안에 가두어져 있는 인간 마음이 행한 악한 생각의 결과를 뚫고 헤쳐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심은 실제로 그의 무한한 본성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공간이란 신품존재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중앙 우주 안에서, 오직 파라다이스 위에서만 식별을 할 수 있게 완전하고 아무런 제약없이 존재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하보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생명체들 안에서는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하나님은 그의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존재를, 함께 협조하는 창조자들과 시공간 우주의 통치자들의 통치력과 신성한 특권을 인정하여,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성한 존재가 있음에 대한 개념은,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 그리고 파라다이스 섬이 펼치는 존재를 위한 회로들(presence circuits)**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범위의 체계와 경로가 나타내는 발현(發顯 manifestation) 모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주 아버지의 존재와 그의 영원한 동조자들 및 대리자들 사이는 항상 뚜렷이 구별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목적을 위하여 모든 무한한 필요한 것들을 완벽하게 채워주고 있다. 그러나, 성품 회로와 조율자에 있어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직접, 단독으로 아주 특별하게 행하신다.

 

우주의 통제자(Universal Controller)는, 모든 창조물이 그것을 하나로 결합하여 구성하여 있도록 하는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존재가 있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물리적 요구사항에 부응하여, 모든 시간 안에 있는 우주의 모든 부분에서 그리고 꼭 같은 수준에서, 그 물질 질량에 따라서, 파라다이스 섬의 중력 회로 안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첫 근원 중심도, 아직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미래 우주의 예비 저장소인,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 안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로써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물리적 우주 안으로 잠재적으로 그 모두 안에 스며들 수 있다. 그는 말하자면 물질 창조의 응집을 위한 가장 근원적인, 기본적인 기초 바탕이다. 이 비-영적인 신품의 잠재는, 그의 전적인 대행자들 가운데 어느 존재가 우주 활동의 무대에서 행하는 불가해한 개입에 의하여, 물리적 존재들의 모든 수준에 두루 걸쳐서 실제로 존재하는, 이곳이 되고 저곳이 된다.

 하나님의 마음이 현실에 나타남은 합동 행위자영원한 영의 절대적인 마음과 서로 연관 지어져 있다. 그러나, 유한한 창조계에 있어서는 파라다이스 주재자 영들의 우주적 마음이 활동하는 모든 곳에서 더욱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첫 근원 중심합동 행위자의 마음 회로 안에 잠재적으로 계시는 것처럼, 바로 그렇게 그는 우주 절대의 긴장 안에 잠재적으로 있다. 그러나, 인간 수준에서 활동하는 마음은, 진화하는 우주의 신성한 대행자합동 행위자의 딸들이 보내주고 있다. 

 

  우주 아버지의 영이 모든 곳에 계심은 영원한 아들의 영이 우주적으로 존재하는 기능과절대의 신품이 항구적으로 갖고 있는 신성한 잠재성의 기능이 서로 도와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아들과 그의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영적인 활동이나 무한한 영이 내려보내는 마음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녀들 안에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의 한 조각인 생각 조율자의 직접적인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하나의 행성이나, 체제, 성단, 또는 하나의 우주에 나타나 계시는 것과 관련하여서, 이러한 어떤 한 창조의 단위에서 존재하는 수준은 지고의 존재가 진화하면서 존재하는 수준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 이것은, 각각의 행성들과 그 상위 조직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우주 조직 기구의 한 부분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 단위 집단의 인식과 충의심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 그러므로, 어떤 행성들이(또는 행성 조직까지도) 영적으로 어두움에 깊이 빠졌을 때, 때때로 하나님의 귀중한 존재의 한 단계인 이들을 보존하고 보호하려는 희망으로, 이들을 어떤 의미로 볼 때 일종의 격리조치를 하거나, 또는 창조의 더 큰 단위와 교류하는 것을 부분적으로 차단하여 분리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유란시아에서 행해진 것과 같이, 모든 이러한 조치는, 완고하고 사악한 반도들의 소수 집단이 외따로 떨어지려는 행위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고립을 당하는 고난으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대다수의 세계를 영적으로 보호하려는 방어적인 조치이다.

 

  아버지는 모든 그의 아들을ㅡ모든 성품존재들을ㅡ아버지로서 회로로 감싸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그들의 근원이 신품두 번째 분 그리고 세 번째 분과의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제한을 받으며, 그리고 그들의 운명적인 성장이 어떤 단계에 가까이 감에 따라 점점 증가하게 된다. 생명체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 아버지의 한 조각, 말하자면 신비의 관조자들과 같은 존재가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그러나 실질적이며 효과적인 하나님의 계심은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 그와 함께하는 조율자와 얼마나 일치하여 협력하느냐 하는 그 정도에 의하여 결정이 된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여러 형태로 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변동성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는 그를 등한시한다고 해서, 은둔하는 모습으로 물러나 계시지 않는다. 그의 애정은 생명체들이 잘못을 행한다고 해서 멀리 떨어져 소원해지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그의 자녀들에게 (그 자신과 관련하여)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러한 선택을 실행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마음과 영혼에 대한 아버지의 신성한 영향력의 정도와 한계를 자신이 직접 결정하게 된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제한이나 편애함이 없이 그 자신을 아낌없이 주신다. 그는 어느 개인이나, 행성, 체제, 또는 우주를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이 미치는 영역 안에서는, 다만 유한한 우주의 공동 창조자들인, 파라다이스가 근원인 일곱 겹인 신의 성품존재들**에게만  차별적인 별다른 영예를 베풀어 주신다. 



** 존재를 위한 회로들 (presence circuits) :  우주가 기본적으로 존재하고 활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회로들로서, 우주 아버지의 성품 인력, 영원한 아들의 영 인력, 무한한 영의 마음 인력, 파라다이스 섬의 물질 중력/인력 회로를 의미함. (15 : 9. 1) 

** 파라다이스가 근원인 일곱 겹인 신 성품존재들( Paradise personalities of God the Sevenfold) : 하나님은 그 근원 원천은 하나이지만, 우주에서 창조활동을 하는 신성을 지닌 성품존재는 일곱 단계 또는 형태로 나누어져 활동을 하고 계심. 이들은 삼위일체 세 분을 비롯하여 지고의 존재, 대우주마다 계시는 일곱 주재자 영, 하나의 대우주마다 세 분이 계시는 태초의 시절, 그리고 각 지역우주마다 계시는 창조자 아들어머니 영들임. (참조 116 ; 2. 4)
  

 

      2.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  ( God's Infinite Power )

 

   
 
모든 우주를 "천주 하나님은 전지전능의 능력으로 지배하신다." 이 세계나 다른 세계의 모든 일들이 신성한 감독 아래에 있다. "그는 땅의 백성들 사이에서 하늘의 군대를 가지고 그의 뜻대로 행하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라는 말은 영원한 진실이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말은 신성한 성품과 일치하는 범위 안에서라면, 문자 그대로 진실이다. 인간들이나, 행성과 우주들에서 긴 세월 동안 전개되는 진화의 과정은 우주의 창조자들과 행정가들의 완전한 통제 아래 놓여 있으며, 모든 면에서 지혜로운 하나님의 계획에 발맞추어 조화와 질서를 지키며 우주 아버지의 영원한 목적에 의거하여 펼쳐진다. 법칙을 만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 그는 세상들을 공간 속에 붙들어 두시고, 영원한 회로인 끝없는 원을 따라서 우주를 돌게 하신다.

  신성한 모든 성품 가운데 그분의 전지전능 하심은, 특히 물질세계에서 그 능력이 확실하기 때문에, 가장 잘 이해되고 있다. 하나님은 영적이지 않은 현상으로 볼 때는 에너지이다. 이러한 물리적 사실에 대한 선언은, 첫째 근원과 중심이 모든 공간 우주의 물리적 현상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진실에 근거를 둔다. 이 신성한 활동으로부터 모든 물리적 에너지와 다른 물질적 출현이 형성되어 나온다. 빛, 즉 열없는 빛은, 신품이 비-영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는 또 다른 하나이다. 그리고, 비-영적인 에너지의 또 다른 한 형태가 있으며 이는 유란시아에게 실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직 인지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능력을 구사하신다 ; 그는 " 벼락이 일어나는 길"을 만드셨고, 모든 에너지의 회로를 정하셨다. 그는 에너지와 사물의 모든 형태가 나타나는 시간과 방법을 천명하셨다. 그리고, 모든 이러한 일들은, 하부 파라다이스를 중심으로 하여 이를 향하여 이끌려가는 중력을 통제하는, 그의 끊임없는 장악 안에 영원히 붙들리어 있다. 따라서 영원한 하나님의 빛과 에너지는, 우주와 우주를 구성하는 별 무리들의 끝없는 그러나 질서 있는 운행인, 그의 장엄한 회로를 따라서 영원히 회전하는 것이다. 모든 창조계는 모든 사물과 존재의 중심인 파라다이스-성품의 중심 주위를 영원히 회전하고 있다.

 아버지의 전지전능은 절대적 수준에 있는 모든 영역과 연관 지어져 있으며, 그 단계에서는 물질적, 마음적, 영적인 이들 세 가지의 에너지들은, 모든 것들의 근원인 그에게 너무 가까이 있으므로 서로 다르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파라다이스의 단원소(單元素 monota)**도 아니고 파라다이스의 영도 아닌 생명체의 마음은, 우주 아버지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생각 조율자를 통하여 유란시아의 유한생명과ㅡ불완전한 존재의 마음과, 그들에 맞추어 적응하고 계신다.  

 

  우주 아버지는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원력이거나, 체제가 바뀌는 물력이거나, 또는 파동/변화를 일으키는 에너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능력과 지혜는 우주의 모든 또는 어떠한  어려운 사태에 대해서도 완전하게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그분은 인간 세상에서 발생하는 긴급사태들 같은 것들에 대하여 모두 예견하시며, 따라서 이러한 우주의 사태들에 대하여 상관없어 하기보다는 오히려 영원한 지혜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리고 무한한 판단의 명령에 호응하여 반응을 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 보이는 모습에 상관하지 않으며, 우주에 숨겨진 힘으로서 작용하지 않는다.

비상사태에 대한 통치가 취해지고, 자연법칙이 중지되며, 잘못된 적용이 인지되고, 그리고 상황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상황들이 일어난다 ;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이해는 너희들의 제한된 견해와, 너희들 이해의 유한함, 너희들 관찰력의 제한된 범위에 기인한다. 따라서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영역들 안에 있는 더 높은 질서, 아버지의 크나큰 성품, 그의 특성의 무한함, 그분이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사실 등에 관하여, 너희들이 갖고 있는 깊은 무지 때문이다.

우주 공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들은, 그 숫자와 그 계층이 거의 무한에 가까우며, 그들의 지능은 대단히 다양하고, 그들의 마음은 대단히 제한적이어서 때로는 아주 조잡하기도 하며, 그들의 시야에는 너무 짙은 막이 쳐져 있고 지엽적이어서, 따라서 아버지의 무한한 특성을 적절히 나타내고 아울러 이러한 창조된 지성들을 어느 정도 포옹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을 만들고 제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너희들 피조물에게는, 모든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많은 행위들이 즉흥적이고, 문제를 상관하지 않거나, 자주 비정하거나 잔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모두 목적이 있으며, 지성적이고, 지혜로우며, 친절하고, 최선의 선을 영원히 고려하시며, 항상 개인적 존재나, 개별적 종족이나, 한 개별적 행성이나, 심지어 개별적 우주의 편에 서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낮은 존재로부터 가장 높은 존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관된 존재들에게 그 이익과 최선의 선을 위하여 행하신다. 어느 시간의 기간 안에서는 한 부분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다른 것처럼 가끔 보이겠지만, 그런 뚜렷한 구분은 영원의 순환 안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며, 그리고, 우리는 그러므로 때때로 가족의 규율을 함께 지켜야 한다. 우리를 그렇게 당황하고 혼란하게 하는 하나님의 많은 행위들은, 모든 지혜를 갖추고 능력을 행하는 합동 행위자의 행위는, 결코 실수함이 없는 무한한 마음의 의지의 선택을 집행하고 완전한 성품존재의 결정을 시행하기 위한 결정과 최종적인 통치의 결과이며, 그 행위자의 관찰과 멀리 내다보심은, 그리고 배려는 그의 광활하고 멀리 뻗어나간 창조계의 가장 높고 영원한 이익을 그 안에 감싸 안고 있다. 

 그러므로, 너라는 존재의 본성 안에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네가 다른 존재와 외따로 떨어져 있으려 하며, 파벌적이고, 유한하며, 조잡한, 그리고 대단히 물질적인 관점과 제한적인 성격이 당신의 장애물이며, 그리고 그러한 장애물이 지혜와 친절의 많은 신성한 행위를 너희들이 보지도,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게 하여서, 너희들 동료 생명체들이 있는 행성의 행복과 개인의 번영에 대하여, 너에게는 파괴를 일삼는 잔인함이 가득 찬 것으로 보이고, 또한 위로와 이익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냉담하게 보인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동기를 잘못 이해하고 그 목적을 왜곡하는 것은, 제한된 인간의 통찰력 때문이며, 또한 너희들의 제한된 이해와 한정된 이해력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진화하는 세상들에서 우주 아버지의 성품적인 행위가 아닌 것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신성한 하늘의 전지전능은 하나님 성품의 다른 특성들과 완벽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통상적으로, 그 능력이 우주에서 세 가지의 조건이나 상황에 의하여 영적으로 발현되는 것에만 제한되어 있다:

 

    1. 하나님의 본성에 따라서, 특히 그의 무한한 사랑에 따라서, 진실, 아름다움, 선함에 따라서.


    
2.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우주의 성품존재들에 대한 그의 자비를 베품과 아버지로서의 관계에 따라서. 


    
3.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영원한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올바름과 정의에 따라서.

 

   하나님은 능력에 있어서 끝이 없으며, 성품으로는 신성하며, 의지에 있어서는 최종적이며, 특성에 있어서 무한하며, 지혜에 있어서 영원하며, 실체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주 아버지의 모든 특성은 신품 안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있으며,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삼위일체의 신성한 아들들 안에서 두루 표현돼 있다. 한편, 파라다이스하보나의 중앙우주 밖에서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은, 저절로 있게 되는 지고위의 존재에 의하여 한정되고, 신품 절대, 우주 절대 그리고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 세 존재적 절대들에 의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는, 진화하는 지고위의 존재에 의하여 제한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따라서 제한되어 있다. 


** 단원소 (單元素  monota) :  우주의 물질 존재를 형성하는 최소 본원적인 단위.  비-영적인 절대적 실체. (42 : 2 .19) 



 

          3.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심  ( God's Universal Kowledge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신성한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생명체의 생각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과 교류를 하신다. 사실에 대한 그의 지식은 우주 전반에 걸쳐서 완벽하다. 그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신성한 존재들은 그의 한 부분이다. "구름을 저울질하는" 그분은 역시 "지식에 있어서도 완전"하다. "천주의 눈은 모든 곳에 있도다." 너희의 위대한 선생은 하찮은 존재인 참새를 일컬어, "그들 중 어느 한 마리도 아버지 몰래 땅에 떨어질 수 없도다." 그리고 또, "너의 머리털 숫자도 낱낱이 셀 수 있도다." "그는 별들의 숫자를 세도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그들의 이름으로 부르시도다."라고 말하였다. 

  우주의 아버지는 이 모든 우주에서 공간의 별들과 행성들의 숫자를 실제로 아는 오직 한 분이시다. 여러 우주의 모든 세계는 끊어짐이 없이 하나님의 인식 안에 놓여 있다. 그분은 또한 말하기를 "나는 내 백성의 고난을 참으로 보았노라, 나는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노라, 그리고 나는 그들의 슬픔을 아노라." "천주는 하늘에서 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람의 아들을 볼 수가 있고, 그가 계신 곳으로부터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볼 수가 있다." 모든 창조된 자녀들은 참으로 말하기를 "그는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알며, 그리고 그가 나를 시련을 겪게 하면, 나는 금처럼 되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앉고 일어남을 알며, 우리의 한없는 생각을 이해하며, 우리의 모든 길을 알고 계신다." "우리가 함께 행할 그분의 눈에는 모든 것이 드러나고 열려 있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대해 "그는 너의 신체를 알며, 네가 먼지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이해하고 있음을 안다면 마땅히 위로가 될 것이다. 예수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때, "너의 아버지는 네가 미쳐 그에게 구하기 전에 네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는 한없는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 따라서 그의 의식은 우주에 두루 떨치어 있다. 그의 개별적인 성품 회로는 모든 성품존재를 그 안에 감싸 안으시며, 그리고 비록 낮은 수준의 생명체에 대한 그의 인지까지도, 간접적으로는 여러 단계의 하강하는 신성한 아들들을 통하여,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함께 생활하는 생각 조율자를 통하여 보강된다. 더 나아가, 무한한 영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악의 사건들을 미리 알려고 하시는지, 또는 아닌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확신이 없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이 행하는 자유의지의 행위를 미리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사전 인지가 자녀들의 자유를 조금이라도 빼앗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결코 놀라는 일이 없으시다.

 

  전지전능함이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 하나님 답지 않는 행동을 하는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전지전능함은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으로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을 유한한 마음에게 이해하게 할 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창조된 생명체들은 창조주가 지닌 의지의 범위와 한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4.   하나님의 무한함
  ( God's Limitlessness )

 


  
우주가 계속 생겨남에 따라 우주 안으로 그 자신을 계속 내려보낸다고 하여서 어떤 경우에도 잠재적인 능력이나 지혜의 창고가 줄어들지 않는다. 왜냐면, 신품의 중심 성품이 그 안에 계속 살아있고 조용히 평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이나 지혜, 사랑의 잠재성과 관련하여, 아버지파라다이스 아들들에게, 또한 그 예하의 창조계에게, 그리고 그에 딸린 수많은 생명체들에게, 그 자신을 아끼지 않고 주신 결과 때문에, 결코 그가 가진 것들이 줄어든 적이 없으며, 또한 그의 영광스러운 성품을 잃어버리게 된 적도 없다.

  새로운 우주를 창조할 때마다, 중력/인력의 새로운 조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비록 창조가 한없이 영원히, 무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야 하더라도, 따라서 결과적으로 물질적 창조가 한정 없이 존재할지라도, 파라다이스 섬 안에 채워지는 통제와 조정의 능력은, 그러한 무한한 우주를 주재하고 관리하고 조종함에 있어서, 여전히 충분하며 변함이 없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한없는 우주 위에 한없는 원력과 물력을 이렇게 내려보낸 후에는, 무한은 같은 정도의 원력과 에너지를 다시 꾸준히 채울 것이다. 그리고, 변환이 안된 순수 절대도 여전히 아무런 감소가 없을 것이다 ; 하나님은, 마치 원력과 에너지와 물력을 이들 우주들의 우주들에게 결코 퍼부어주지 않은 것처럼, 여전히 꼭 같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지혜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마음을 많은 영역에 있는 생각하는 존재들에게 그렇게 자유로이 나누어 준다고 해서 어떤 경우에도 중앙 근원의 신성한 지혜가 빈곤해지는 일이 결코 없다. 우주의 숫자가 늘어나고 영역에 있는 존재의 숫자가 이해가 미칠 수 있는 한계에 이르기까지 늘어나서, 그래서 만약 마음의 수준이 높거나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 존재들에게 내려주기 위하여 끝없이 증가한다고 하여도, 중앙에 있는 하나님의 중심 성품은 영원하고 무한한 모든 종류의 마음을 꼭 같이 계속 품고 있을 것이다.

  그가 그 자신으로부터 영의 메신저들을 너희들 세상이나 다른 세상에 있는 남자와 여자들과 함께 살게 하기 위하여 보내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신성한 모든 능력을 지닌 영 성품존재로서의 그의 능력을 줄어들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보낼 수 있거나 보내고자 하는 그러한 영 관조자의 숫자나 범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아무런 제한이 있지 아니한다. 이렇게 그의 생명체들에게 그 자신을 주는 것은, 이렇게 신성하게 주어진 유한생명들이 진보하면서 성공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한없이,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의 가능성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을 이렇게 봉사하는 영 존재로서 낭비하듯이 아무렇게나 나누어 줌이, 어떤 방법으로도, 모든 면에서 현명하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모든 능력을 지니신 분인 아버지 개별적인 성품에게 담겨 있는, 진리와 지식의 지혜와 완전성을 줄어들게 하지 않는다.

 

  시간을 가진 유한생명에게는 미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 안에서 살아 있다. 내가 비록 신품이 살고 계시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 왔지만, 신성한 하나님의 많은 특성의 무한함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무한한 마음 만이 무한한 존재와 영원한 행위를 완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유한생명 인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무한하심에 대하여 알 길이 없다. 유한한 마음은 그러한 절대적 진리나 사실을 통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유한한 인간도 그러한 무한한 아버지의 사랑의 충만함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충격을, 실제로ㅡ사실적인 경험으로ㅡ느낄 수 있다. 그러한 사랑은, 경험의 질이 제한적이고, 그러한 경험의 횟수가 영적인 받아들임에 대한 인간의 능력에 따라,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에 회답하여 사랑할 수 있는 연관된 능력에 의하여 엄격히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정말 체험을 할 수가 있다.

  무한한 성질에 대한 유한한 이해는, 유한생명 인간이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 안에 무한함의 한 조각이 살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생명체의 능력을 훨씬 뛰어 넘는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에게 가장 가까이 그리고 친밀하게 접근하는 길은 사랑을 통하여 그리고 사랑에 의해서이다. 왜냐면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특별한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ㅡ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애정으로, 우주의 사회학 공부에 있어서 실질적인 체험이 된다.

 



           5.   아버지의 지고한 다스림  ( The Father's Supreme Rule )


  우주 아버지
하보나를 창조한 이후 존재하게 된 창조계와의 접촉에 있어서, 그는 그의 무한한 능력이나 최종적인 권한을 사용하여 직접 행하기보다는, 그의 아들들이나 그 아들들이 거느리는 성품존재를 통하여 이를 행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그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하신다. 아래로 내려준 어떤 권한이나 모든 권한이라도, 만약 어떤 사정이 발생한다면, 만약 신성한 하늘의 마음으로 꼭 선택을 하여야 한다면, 직접 이를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원칙적으로, 위임을 받은 성품존재가 하늘이 맡긴 신성한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실패를 하였을 경우에만 행하여 진다. 그러한 경우에, 그러한 잘못을 직면하게 되면, 예비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성한 하늘의 능력과 잠재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아버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그 자신이 선택한 결심에 따라서 행하신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실수함이 없이 완벽한 것이며 무한히 지혜로운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들을 통하여 다스리신다. 아래로 이어지는 우주 조직은 행성 영주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단절됨이 없이 통치자가 연결되어 있으며, 행성 영주아버지의 광활한 영역인 진화하는 구체 세상들의 운명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는 왕들을 제거하고 또한 임명하신다." “가장 높은 분들이 인간의 왕국을 다스리신다."라고 설파함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에 있어서는 우주 아버지가 항상 그의 뜻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성의 업무와 운명에 있어서는 신성한 하늘의 계획이 끝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지혜와 사랑의 영원한 목표는 승리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그들을 주신 나의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더 위대하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나의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가로채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거의 한없는 창조 세계가 벌이는 수많은 작업을 너희들이 약간 엿보게 되고 그리고 서로 엇갈리는 듯한 광대무변함을 보게 되었을 때, 그분의 뛰어남에 대한 너의 생각이 주춤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모든 것의 중심인 파라다이스에 확실하게 그리고 영원히 권좌에 계시는 그분을, 모든 지성적 존재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로서 받아들임에 있어서 결코 실수하여서는 아니 된다. "오직 한 분 하나님, 모두의 아버지만이 계시며, 그분은 모두의 위에 계시며 또한 모두의 안에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에 앞서 있으며,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이 존재한다."

  인생이 불확실하고 존재에게 변화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점이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개념과 어떤 식으로도 상치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모든 진화하는 생명체의 생애는 어떤 피할 수 없는 것들  감싸고 있다. 아래의 것들을 생각해 보라:

  1. 용기ㅡ강인한 성품은ㅡ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어려움을 견디어 내고 실망에 맞서 대항하여야만 하는 환경에서 성장하여야 한다.

  2. 이타심 ㅡ자기 동료들에 대한 봉사가ㅡ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불공평한 사회적 여건과 부딪치는 인생의 경험을 하여야만 한다.

  3. 희망 ㅡ숭고한 믿음이ㅡ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함에 있어서 안전하지 못함과 반복되는 불확실성과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갈등을 겪어야만 한다.

  4. 신념 ㅡ인간 생각의 지고한 확신은ㅡ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든 곤경의 처지에서 인간의 마음이 자신의 그 마음을 발견하여야만 한다.

  5. 진리에 대한 사랑 과 그 사랑이 이끄는 곳으로 가려는 의지는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잘못이 항상 가능한 세상에서 성장하여야만 한다.

  6. 이상주의 ㅡ신성한 하늘의 생각으로 나아가는 것은ㅡ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상대적인 선함과 아름다움이 있는 환경과, 더 나은 것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발버둥의 자극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투쟁을 하여야만 한다.

  7. 충의심 ㅡ가장 높은 의무에 대한 헌신은ㅡ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배신과 내팽개침의 가능성 속에서 일을 해보아야 한다. 임무에 대한 헌신의 용기는 잘못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위험 속에 있는 것이다.

  8. 비-이기적인 마음은 ㅡ자기를 잊어버리는 정신은ㅡ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유한생명 인간은 명예를 얻고,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도저히 피할 수없는 자기 자신의 끊임없는 외침의 소리와 바로 직면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인간은 만약 자기 중심적인 인생을 버리지 못한다면, 신성한 인생을 힘 있게 선택할 수가 없다. 인간은 만약 선을 고양시키고 이를 차별화하기 위하여, 이와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잠재적인 악의 가능성이 없다면, 올바름을 유지하려는 꾸준한 노력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9. 기쁨 ㅡ만족한 행복은ㅡ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아픔과 괴로움 같은 것들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에서 언제나 살아야만 한다.

  온 우주에 있어서, 각각의 한 개체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한 부분의 생존은 전체의 계획과 목적에 협력하는 것, 아버지의 신성한 뜻을 행하려고 하는 온 마음을 바치는 열망과 완전한 의지에 달려 있다. 실수(현명하지 않은 판단의 가능성)가 없는 진화하는 세계란 오직 자유로운 지성이 없는 세계일 수 있을 것이다. 하보나 우주 안에는 완전한 거주민을 가진 10억 개의 완전한 세계가 있지만, 그러나 진화를 하는 인간이, 만약 그가 자유롭다면, 반드시 실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우면서 경험이 없는 지성은 처음부터 하나같이 현명할 수가 없다. 오직 인간의 의지가 고의적이고 비도덕적인 판단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알면서 포용할 때,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가능성(악)이 죄가 되는 것이다.

  진리와 아름다움, 선함에 대한 완전한 가치는 신성한 우주의 완전함 안에 본래부터 있는 것이다. 하보나 세상에 사는 주민에게는 그의 선택을 위한 자극을 위하여 그에 상대적인 가치 수준에 있는 어떤 잠재적인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 그러한 완전한 존재들은 모든 대조적이며 생각을 강요하는 도덕적인 상황이 없더라도 선을 알아보고 선택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완전한 모든 존재들은, 도덕적 본성이나 영적 상태에 있어서, 그들이 그러한 것은 존재 자체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본래부터 지닌 상태 이내에서 경험을 통하여 진보를 이루어 왔다. 유한생명 인간은 그의 상승을 위한 후보자의 자격 마저도 그 자신의 신념과 희망에 의하여 얻는다. 인간 마음이 잡아야 하고 인간의 혼이 획득해야 하는 신성한 모든 것은 경험을 통하여 얻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 경험의 실체 이며, 그러므로, 잘못이라고는 없는 하보나의 성품존재들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함과 올바름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아주 특별한 재산이다.

  하보나의 생명체들은 천성적으로 용감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느낌으로는 그렇게 용감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친절하고 사려가 깊지만, 그러나 인간이 하는 것 같이 그런 식으로 이타적이지 않다. 그들은 즐거운 미래를 기대하지만, 그러나 확실하지 않은 진화의 영역에서 유한생명이 믿는 기대에 부푼 태도처럼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 그들은 우주의 안정성에 대하여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유한생명 인간이 동물의 단계에서 파라다이스의 문턱에까지 올라가면서 신념을 쌓아가는 것에 비교하면 전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만, 그러나 그 진리가 영혼을 구하는 성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이상주의자들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 그들은 활기찬 선택으로 그렇게 되는 열정의 기쁨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충성스럽지만, 그러나 버림을 당할 유혹에 직면하면서 의무에 대해 온 마음을 모두 바치는 지성적인 헌신의 짜릿함을 그들은 결코 경험하여 보지 못한다. 그들은 이기적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멋진 정복의 경험으로 얻는 그러한 수준을 그들은 결코 얻을 수 없다. 그들은 기쁨을 즐기지만, 그러나 고통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난 달콤한 즐거움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6 .  
가장 으뜸이신 아버지
  ( The Father's Primacy )

 

  
  
신성한 하나님의 비이기적임과 더할 나위 없는 관대함 때문에, 우주 아버지는 권한을 양도하여 그 권능을 아래로 내려보내신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가장 기본 으뜸이시다. 그의 손은 우주 영역의 환경에 대한 막강한 조종 손잡이이다. 그는 모든 최종적인 결정권을 예비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그리고 멀리 뻗어나간, 휘몰아치듯 언제나 회전을 하고 있는 창조계의 이익과 운명에 대한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영원한 목적을 위하여 모든 권한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왕권을, 실수 없이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통치권은 제한이 없다. 그것은 모든 창조계의 근본적인 사실이다. 우주는 어쩔 수 없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우주는 우연한 사고도 아니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우주는 창조에 의한 작품이며, 그러므로 전적으로 창조주의 의지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의지는 신성한 진리이며, 살아있는 사랑이다 ; 그러므로, 신성으로 가까이 가려함인ㅡ선함과 그리고 신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 함인ㅡ잠재적인 악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진화하는 우주들로 이루어진 완벽한 창조물이다.

 

   모든 종교적 철학은, 조만간, 하나의 하나님이란 통일된 우주의 법칙의 개념에 이르게 된다. 우주의 원인이 우주의 결과보다 결코 그 밑에 있을 수 없다. 우주의 생명과 마음이 흐르는 그 근원은 그것이 나타난 현상의 단계보다 반드시 위에 있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에게 더 낮은 존재들에 대한 사항을 조리 정연히 설명할 수가 없다. 인간의 마음은 다만 더 높은 수준에 있는 실체들의 생각과 목적 의지를 인식함으로써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우주 아버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은 설명이 될 수가 없다.  

   기계론적인 철학자는 우주를 지배하는 의지가 있다는 이론을 반대하기를 주장하지만, 그는 또한 우주 법칙을 좇아서 활동하는 바로 그러한 지배적 의지를 아주 깊이 존중한다.  기계론자가, 스스로 활동을 시작하고 스스로 설명이 되는 그러한 법칙을 인정하게 될 때, 결과적으로 그는 법칙의 창조자에게 의도하지도 않는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함께 살아가는 생각 조율자의 개념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을 인간화한다는 것은 아주 큰 잘못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도, 첫 거대한 근원이며 중심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기계화 로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그렇게 우둔한 것은 아니다.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고통을 느끼실까? 나는 알지 못한다. 창조자 아들들은 대부분 확실히 느끼며 때때로, 유한생명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느낀다. 영원한 아들무한한 영은 변형된 감각으로 괴로움을 느낀다. 내 생각에 우주 아버지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성품존재들의 회로를 통하여서 이거나, 또는 생각 조율자 개체들이나, 또는 다른 형태로 그 자신의 성품을 내려보냄을 통하여서 일 것이다. 그는 유한생명의 종족들에게 " 너희들 모두의 괴로움으로, 나는 고통을 받느니라."라고 말해 오셨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버지로서 연민의 마음으로 경험을 하신다. 따라서 그는 틀림없이 고통을 느끼시겠지만, 나는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성격을 알지 못한다.

 

   우주들 속의 우주를 다스리는 무한하고 영원한 통치자는 힘, 형태, 에너지, 과정, 바탕 원형, 원칙, 현실에 나타나 계심, 그리고 이상화된 실체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 이상이시다. 말하자면, 그는 개별 성품존재이시다 ;  그는 통치하는 의지를 실행하시며, 신성을 자기 스스로 인식하는 체험을 하시며, 창조하는 마음의 결심을 실천하시며, 영원한 목적을 실현하여 얻게 되는 만족감을 추구하시며, 그의 우주의 자녀들을 위하여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열정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더욱 개인적인 이러한 모든 성품은, 너희들의 창조자 아들, 마이클유란시아에 육신을 쓰고 태어났을 때 나타내 보여준 그 모든 것을 관찰함으로써 더욱 더 잘 이해될 것이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  아들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일하신다. 영이신 하나님은 우주의 자녀들이, 아들이신 하나님이 예정하여 놓은 길을 통하여, 영이신 하나님이 베푸는 은혜를 통하여,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계속하여 올라가야 하는 모험을 하도록 고무하고 격려하신다.       


 

 

우주 아버지의 존재를 밝히는 글을 쓰도록 임명받은 신성한 상담자인 나는, 신품의 특성에 이어 이 글도 계속하여 기록하였다. ]

 

 
© Ascending Together in the Urantia Book.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