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우주와 대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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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본성

                                ( The Nature of God )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높은 개념은, 근원적이고 무한한 성품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이념과 이상 안에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품의 특성을 구성하는 어떤 신성한 본성의 특징들을 공부하는 것이, 이것이 가능하다면,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은, 네바돈마이클이 육신으로 있는 동안 알려준 그의 많은 가르침과 그리고 지고한 유한생명의 생애를 통하여 펼쳐 보여준, 아버지를 밖으로 나타내어 보여준 그의 생애를 통하여 가장 잘 이해될 것이다. 또한 이 신성한 본성은, 만약 인간이 그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고 파라다이스 창조주를 참다운 영적 아버지로 우러러본다면, 그러한 인간에 의하여 더욱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은 지고의 이념이 그 모습을 나타냄을 통하여 알 수 있으며, 신성한 특성은 지고한 이상이 그 모습을 가짐으로써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가장 깊은 깨달음을 주고 영적으로 계몽을 시키는 신성한 본성이 나타난 것은, 나사렛 예수의 종교적 삶을, 특히 신성에 대하여 그가 완전한 인식을 획득하기 전과 그 후 모두를 이해함으로써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육신을 지니고 태어난 마이클의 생애가 인간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어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 취해진 것이라면우주 아버지의 성품존재가 지닌 본성과 특성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더욱 잘 그려주고 통일을 시켜주기 위하여, 아마 기여할 가능성이 있는 신성한 본성과 관련된 어떤 생각과 이상을, 우리가 인간의 언어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보다 넓히고 영성화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있어서, 우리는 유한생명 인간의 제한된 능력 때문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우리는, 신성한 가치들을 서술하기 위한 표현과 비교를 위하여, 그리고 유한생명 인간의 유한한 마음에게 영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제한되어 있고 자료가 빈곤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이행함에 있어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넓히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만약 인간의 마음 안에 우주 아버지가 내려보내주신 조율자가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고, 그리고 만약 창조자 아들진리의 영이 스며들어 있지 않는다면, 거의 부질없는 일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슴 안에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기 위한 이들 신성한 영들의 계심에 의지하여, 나는 하나님의 본성을 인간에게 더욱 자세히 나타내어 보여주려는, 나에게 주어진 이 일을 즐겁게 이행하려 한다.


                1.   하나님의 무한함   ( The Infinity of God )

   "우리는 무한한 분(Infinite)을 접하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도다. 신성한 발자국을 알지 못하는구나." "그의 이해심은 무한하며, 그의 위대하심은 헤아릴 수 없이 크도다. "아버지의 존재는 눈을 멀게 하는 빛으로, 낮은 수준의 생명들에게는 그가 마치 "짙은 어둠 속에 계시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의 생각과 계획하심은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는 위대하고 경이로운 일들을 수 없이 행하신다." "하나님은 위대하다.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의 나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하나님은 정말 이 땅 위에 살고 계실까? 보라, 하늘(우주) 그리고 하늘 위의 하늘(우주들 속의 우주)도 그를 담을 수 없도다." "그의 판단을 어찌 헤아리겠으며, 그의 지나간 길을 어찌 찾을 수 있으리오."
   "
그러나,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시니, 무한한 아버지로서, 또한 신의의 창조주이시다." "신성한 창조주는 또한 우주의 배치자(Universal Disposer)이며, 영혼의 근원이며 최종 목적이시다. 그는 지고한 영혼(Supreme Soul)이며, 으뜸의 마음(the Primal Mind)이고, 모든 창조를 위한 한없는 영(Unlimited Spirit)이다." "위대한 통제자(Controller)께서는 결코 실수를 하지 않으신다. 그는 위엄과 영광으로 찬란히 빛난다." "창조주 하나님은 두려움과 증오심과는 전적으로 상관이 없다. 그는 생명의 끝이 없으며, 영원하고, 스스로 존재하며, 신성하며, 그리고 풍성하고 풍족하시다." "모든 것들의 가장 지고한 조상(Ancestor)께서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얼마나 깊고 가늠할 수 없으신가! "무한한 분은 가장 뛰어난 존재로서, 그는 그 안에서 인간에게 그 자신을 나누어 주고 계신다. 그는 시작이요 끝이며, 모든 선하고 완전한 것의 목적이 되는 아버지이시다. "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며, 영원한 창조주는 모든 원인 중의 원인이시다."

   영원하고 우주 어디에나 계시는 아버지의 성품이 거대하게 나타나심이 무한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신의 완전함과 능력을 충분히 아는 것처럼, 그의 무한함과 영원함을 아무런 제한과 조건 없이 스스로 인식하고 계신다. 그는 그의 신성한 협력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자신에 대하여 완전하고 적절하며 완벽한 평가의 경험을 하는, 우주에서 오직 유일한 존재이시다.
  
아버지는 그의 전우주의 여러 분야에서 시간이 감에 따라 바뀌는 변화의 요구를,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 자신을 위하여 끊임없이 그리고 실수함이 없이 충족하여 주신다. 위대한 하나님은 그 자신을 알고 또한 이해하신다. 그는 그의 완전한 근원적 속성에 대하여 스스로 무한정으로 인식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어쩌다가 생겨난 존재가 아니고, 우주를 실험하는 분도 아니다. 우주의 주권자들은 모험에 관여할 수 있고, 성단의 아버지(Constellation Fathers)은 실험을 할 수 있으며, 지역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실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 아버지는 시작할 때 이미 그 끝을 보며, 그리고 그의 신성한 계획과 영원한 목적은, 그의 방대한 우주 영역에 있는 각각의 성단과 조직과 세계들 안에 있는 그의 모든 아래 존재들이 하는 모든 실험과 모든 모험을 실제적으로 포용하고 이해를 한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이 아니며, 우주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도 놀라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영원한 순환으로 살고 계신다. 그에게는 날짜의 시작이나 끝이 없다. 하나님에게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다. 모든 시간이 어느 주어진 순간에도 현재이다. 그는 위대하고 그리고 오직 나 이로다 이다.

   우주 아버지는 그의 모든 속성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침이 없이 무한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유한한 물질적 존재들이나 차원 낮게 창조된 다른 모든 지적 존재들과, 그 자신이 바로 개별적으로 서로 교류하지 못하게 그 자신 스스로 자동적으로 차단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첫째로, 비록 신성에 있어서 완전하며, 또한 행성 종족들의 피와 살의 본성에 자주 참여하여, 너희들 중의 하나로 또는 너희와 하나로 되기도 하는 파라다이스 하나님아들들에게, 그들의 성품존재에게 조치한 것처럼, 그의 다양한 생명체들과 접촉하거나 교류를 하기 위한 적절한 배려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사람의 아들로도 서로 바뀌어 불리어질 수 있었던 마이클을 내려보내심에서 일어난 것 같이,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차원 낮은 출신의 물질적 존재들에게 가까이 내려와서, 여러 가지로 그들을 돕고 봉사하는 무한한 영이나, 여러 수준의 세라핌** 계급의 무리들, 그리고 다른 천상의 지적 존재들과 같은 성품존재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셋째로는, 하나님 자신이 아무런 설명이나 알림도 없이 유란시아의 인간 같은 존재들에게 함께 살도록 내려보낸 실질적인 선물인, 성품존재가 아닌 신비의 관조자, 생각 조율자가 있다. 이들 끝없이 많은 존재들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능력을 가졌거나 그러한 잠재력을 가진 인간의 비천한 마음을 우아하게 만들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영광의 높은 위치로부터 내려온다.
  
이러한 방법이나 다른 여러 방법으로, 그리고 너희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유한한 생각이 전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파라다이스 아버지, 그의 창조물 자녀들의 유한한 마음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무한성을 사랑으로 기꺼이 단계를 낮추거나, 다르게 수정하거나 약하게 하거나 희미하게 낮추신다. 그렇게 하여, 무한한 아버지, 절대를 점점 약하게 하는 것인 일련의 성품 배분을 통하여, 그의 멀리 뻗어나가는 많은 영역에 있는 다양한 지적 존재들과 가까운 접촉을 하는 즐거움이 가능한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하여 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무한성과 영원성, 으뜸성의 실체와 사실을 조금도 손상시키거나 줄임이 없이 언제까지나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유란시아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풀리지 않는 신비이며, 또는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사실이다.

   첫 아버지(First Father)는 그의 계획에 있어서 무한하며, 그의 목적에 있어서 영원하기 때문에, 어떤 유한한 존재라도 이러한 신성한 계획과 목적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파악한다는 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유한한 인간은 아버지의 목적이, 우주 진보의 계속되는 여러 단계에서 생명체들을 상승시키려는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에, 다만 이 시점 저 시점, 여기저기에서 그 목적을 조금은 엿볼 수는 있을 것이다. 비록 인간이 무한함의 중요한 의미까지는 이해를 넓힐 수는 없지만, 무한한 아버지는 모든 우주에 있는 그의 모든 자녀들의 모든 유한함을 가장 확실히 잘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신다.
  
아버지는 신성과 영원성을 파라다이스에 있는 대단히 많은 높은 존재들과 나누어 가지신다. 그러나 우리는 무한성과 그에 따른 우주적 으뜸성을 그의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상호 협력 구성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와도 나누어 가지는 점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 성품존재의 무한성은 필연적으로 성품존재의 모든 유한성을 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분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그리고 우리가 있음이라."라고 천명하는 가르침은 진리ㅡ말 그대로 진리ㅡ이다. 유한한 인간 안에 살고 있는 우주 아버지의 순수한 신품의 그 한 조각은 첫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 우주 아버지의 무한함의 한 부분이다


** 세라핌 (seraphim) :  영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천사들 가운데 한 계층으로서, seraphim seraph의 복수형기독교는 이를 히브리어를 바탕으로 "스랍"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음.      


         2.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 The Father's Eternal Perfection )

    너희들의 옛날 선지자들까지도, 우주 아버지의 영원하며, 결코 시작이 없었으며, 또한 결코 끝이 없으며한없이 순환하는 그의 본성에 대하여 이해를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우주들 안의 모든 우주 안에 말 그대로 영원히 계신다. 그는 현재 이 순간에도 그의 모든 절대적 위엄과 영원한 위대함을 지니며 살아 계신다. "아버지는 그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시며,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세월에 걸쳐서 "모든 생명을 주신" 분은 아버지이었다. 신성한 성실함 안에는 무한한 완전함이 있다. "나는 천주로다. 나는 변하지 않는 도다." 우주 안의 모든 우주에 대하여 우리가 알기로는, 그가 다만 빛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그가 행성 간의 일들을 집행함에 있어서도 "결코 변함이 없으며 변화의 그림자조차도" 없다는 사실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는 "시작할 때부터 그 결과를 선언하신다." 그는 "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나는 모든 나의 즐거운 일을, 내가 나의 아들 안에 세운 영원한 목적에 의거하여 행하리라." 그러므로 첫 근원과 중심의 계획과 목적은 그 자신처럼 영원하며, 완전하고,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명령은 완전함의 완성이며, 풍부함의 완전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더라도 그것은 마땅히 영원할 것이며, 그것에 어떤 더함도 있을 수 없고 그것에서 어느 것도 뺄 수가 없으리라. "우주의 아버지는 지혜와 완전으로 이뤄진 그의 최초의 목적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다. 그의 기획은 확고하며, 그의 계획은 변경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또한 그의 행함은 신성하며 결코 실수가 없다." 그분의 눈에는 지나간 천 년이 다만 어제와 같고 밤중에 행하는 한차례 순찰과 같으니라."  신성의 완전함과 영원의 장대함은 제한되어있는 유한생명 인간 마음에게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저 너머 건너편에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실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보여주는 변화가 없는 반응은, 그의 창조된 지적 존재들이 갖는 변화하는 태도와 변덕스러운 마음에 따라서 다양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반응은 분명히 표면적으로는 다양하다. 그러나, 표면 아래, 밖으로 나타난 것의 아래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목적과 영원히 지속되는 계획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우주의 외부 쪽에서는 완전함이란 필수적으로 반드시 상대적인 조건이어야 하지만, 중앙우주 특히 파라다이스 안에서는 완전함이란 결코 희미하게 희석이 될 수 없으며, 어떤 단계에서는 절대조차이기도 한다. 삼위일체의 나타남은 신성한 완전함을 다양하게 보여주지만, 그러나 결코 완전성을 묽게 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최고 으뜸의 완전성은 어떤 추진으로 얻어지는 올바름에 있지 않고, 그보다는 그의 신성한 본성인 선함의 본래적인 완전함에 있다. 그는 완결이며, 완성이며, 완전이다. 그의 올바른 성품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에는 그 어떠한 결함도 없다. 그리고, 공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들의 모든 계획과 목적은, 모든 의지를 지닌 생명체들을 아버지가 계신 파라다이스의 완전함을 나누어 갖는 높은 체험의 운명으로 끌어올리려는 신성한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 홀로 자족하는 분이 아니다. 그는 이 광활한 우주의 모든 우주에 있는 모든 자아의식을 지닌 생명체들에게 자기를 내려보냄에 있어서 결코 중단함이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무한하게 완전하며그 자신의 체험으로는 불완전을 개별적으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모든 파라다이스 창조자 아들들이 만든 진화하는 우주의 모든 투쟁하는 생명체들이 겪는, 불완전에 대하여 겪는 모든 체험을 함께 나누어 의식을 한다. 완전한 하나님의 개별적이며 자유를 허용하는 손길은, 도덕을 분별할 수 있는 우주의 단계에까지 올라온 모든 인간 생명체들의 가슴을 감싸주며, 본성의 회로가 돌게 하여 준다. 이러한 방법으로, 또한 신성한 존재가 접촉하는 것을 통하여, 우주의 아버지는 전우주에 있는 각각의 도덕적 존재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미성숙과 불완전에 참여하여 실질적으로 이를 경험하게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제한성은, 잠재적인 악은, 신성한 본성의 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악과 관련된  인간의 체험이나 그리고 악에 대하여 모든 인간이 갖는 관계는, 파라다이스로부터 밖으로 나온 각각의 창조자 아들에 의하여 창조되었거나 진화되어온, 도덕적인 책임을 지닌 생명체들ㅡ시간 속의 자녀들 안에서언제까지나 확장되는 하나님의 자기실현의 한 부분임은 거의 확실하다. 


         
           3.    
공정/정의 와  올바름  ( Justice and Righteousness )  

 
 
하나님은 올바르시다. 그러므로, 그는 공정하다. "천주이신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은 올바르다." "천주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한 모든 일은 까닭 없이 행하지 않았느니라.'" "천주의 판단은 진실되며 또한 올바르다." 우주 아버지의 공정하심은 그의 피조물들의 행동이나 행위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의 하나님 천주와 관련하여서는 부정이란 있을 수 없으며, 개인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며, 어떤 대가적 선물도 받지 않으신다."

  그러한 하나님에게, 그의 지혜로운 자연법칙과 올바른 영적 규율이 작용하여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를 우리가 피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변화라고는 있을 수 없는 그의 규칙을 수정해 달라고 유치한 호소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기만하지 말라. 하나님은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 왜냐면, 사람이 무슨 씨를 뿌리든지 간에 그는 그것을 거두어들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악행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정의에 이르기까지도, 이 신성한 정의는 항상 자비에 의하여 부드러워진다. 무한한 지혜는,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이를 자로 잰 듯이 알 수 있는 정의와 자비의 비율을 결정하는 영원한 중재자이다. 하나님의 정부에 대항하는 악행과 용의주도한 반역에 대한 가장 큰 처벌은(실제로는 피할 수 없는 결과) 그 정부를 구성하는 개인적인 백성으로서 주어진 존재의 상실이다. 온 마음으로 저지른 죄의 최종 결과는 소멸이다. 결국, 그러한 죄가 명확히 밝혀진 개체는 불의를 그들 스스로가 받아들이게 되어 완전히 실체가 되지 않음에 따라서, 그들 자신을 파괴하고야 만다. 그러나 그러한 생명체의 실질적인 사라짐은, 그 우주 안에 예정된 정의의 회로를 위한 질서가 완전히 갖추어질 때까지 항상 지연된다.

  존재의 단절은 일반적으로 한 영역이나 또는 여러 영역에서 섭리적 또는 시대별 판결이 있을 때 선고된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계에서의 이러한 판결은 행성 단위의 섭리시대의 끝에 일어난다. 존재의 단절은, 그러한 섭리 종말 때, 행성 사법위원회를 시작하여, 창조자 아들의 법정을 거쳐서, 태초의 시절이 주관하는 심판 위원회까지 이르는 모든 관할 법정의 합의에 따른 조치에 의하여 선고될 수 있다. 분해 소멸의 명령은, 악행자가 거주하는 구역에서 시작된 기소가 중간에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하여 위로 확인됨에 따라서, 대우주의 고등 법정에서 발의된다. 그리고 나서, 소멸 선고가 상부에 의하여 승인이 났을 때, 대우주 본부에 거주하면서 활동하는 재판관이 직접적인 법을 집행한다.

  이 선고가 최종적으로 확인이 되었을 때, 죄가 확인이 된 존재는 즉각 그가 존재도 하지 않은 것처럼 된다. 그러한 운명에게는 부활이란 없으며, 이는 항구적이며 영원하다. 그 정체성 존재의 생존 에너지 요소는 시간의 이동 변화와 공간의 형체 변형에 의하여, 한때 그들이 출현하여 나왔던 곳인 우주의 잠재성으로 분해된다불의를 저지른 성품존재에 대하여 말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도 있었을 그러한 선택을, 마지막 그러한 결심을 하지 못한 생명체는 그러한 그의 실수 때문에, 계속하여 그를 운반할 생명 운반체를 빼앗기게 된다. 그 존재와 연결된 마음이 죄를 계속하여 감싸 안음으로써 불의와 완전히 하나로 되었을 때, 그러한 외따로 분리된 성품존재는 그때 생명의 단절이 일어나고 우주적인 분해 소멸이 일어나서, 창조계의 거대영혼 안으로 흡수되어 버리며, 이는 지고의 존재의 진화하는 경험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결코 다시는 성품존재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정체성은 결코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되어버린다. 조율자가 그 안에 함께 있었던 성품존재이었다면, 그가 경험한 영적 가치들은 계속 존재하게 되는 조율자의 실체 안에 살아있게 된다.

  우주에서 실제의 수준에 있는 실체들 사이의 어떤 경쟁에서도, 높은 수준의 성품존재는 낮은 수준의 성품존재에 대하여 궁극에 가서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적 논쟁의 필연적 결론은, 어떤 존재의 신성의 정도는 그 의지 생명체의 실체 또는 실제성의 정도와 동등하다는 사실에서, 본래적인 것이다. 순전한 악, 완전한 실수, 의도적인 죄, 철저하게 사악함은 본래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자멸하게 되어 있다. 우주에 있어서 이러한 비-실체인 모습들은, 우주 법정이 공정한 판결을 위한 확고한 정의의 조치와 공평한 조직 구조를 찾을 때까지, 다만 과도기적인 자비와 관용 때문에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지역 우주에 있는 창조자 아들이 지켜야 하는 법칙은 창조와 그리고 영성화이다. 이들 아들 진보를 통하여 유한생명을 상승시키려는 파라다이스의 계획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하여, 또한 반역자들이나 잘못 생각한 자들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헌신을 다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랑의 노력이 끝까지 영원히 거절될 때는, 분해 소멸을 시키라는 최종 선고가 태초의 시절들의 권한 아래 행동하는 집행부서(forces)에 의하여 실행이 된다.  

               
                     4.  
신성한 자비  ( The Divine Mercy ) 

  자비란, 유한한 생명체의 천성적인 연약함과 환경에 의한 어려움을 완벽하게 알고 완전하게 인식함에 따라서 생겨나는 지혜에 의하여 누그러진 올바른 행위, 정의일 뿐이다. "우리 하나님은 동정심이 넘치고, 인자하시며, 참을성이 깊으시고, 자비심으로 가득하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천주에게 간청하는 자는 구함을 받을 것이니," "왜냐면 그는 많은 용서를 베풀 것이기 때문이라." "천주의 자비는 끝없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하다, "그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되도다." "나는 이 땅에서 사랑에 넘치는 친절과 심판, 정의를 행하는 천주이니라. 왜냐면 내가 이 모든 일로 기뻐함이라." "나는 자식인 인간을 의식적으로 괴롭히거나 슬프게 하지 않으니, "왜냐면 나는 "자비의 아버지이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본래 친절하며, 자연스럽게 동정심이 많으며, 끝없이 자비로우시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의 사랑이 넘치는 친절을 계속하여 갖도록 어떤 영향을 결코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생명체들이 아버지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부드러운 자비와 구원의 은혜가 흘러 넘쳐나게 함에 있어서 틀림없이 충분하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용서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의 이웃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은 그를 더욱 용서하기 쉬우며, 나아가 그를 사랑하기까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한한 지혜에 따른 분별력만이, 오직 올바르신 하나님이 정의와 자비를, 우주 안에서 어떤 주어진 경우에도, 이 둘을 함께 베풀 수 있게 한다. 천국에 계신 아버지는 그의 우주에 있는 자녀들에게 갈등하는 자세로서 결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서로 상반되는 태도로 인해 희생을 당하는 일은 결코 없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그의 영원한 본성인 신성한 성품과 무한한 성질의 요구를 완전하게, 동시에, 그리고 균등하게 만족시키는 우주의 행위를 선택함에 있어서, 그의 자유의지를 실수없이 행하신다.

  자비는 선함과 사랑에서 생겨나는 자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파생물이다.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선한 본성은, 그의 우주에 퍼져있는 모든 그룹의 모든 각각의 구성원 자녀들에게 자비를 지혜롭게 베푸심을 중단할 길이 없다. 영원한 정의와 신성한 자비는 이 둘이 함께,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 공정함 (Fairness)이라 불리는 것을 구성하고 있다.

  신성한 자비는, 완전함과 불완전함 사이를 우주적 수준에서 조율하는 공정한 방법을 대변하여 준다. 자비란 진화하는 유한한 존재들의 입장에 적용하여 지고위가 행하는 정의이며, 이는 영원한 올바름이 시간 안에 있는 자녀들의 가장 높은 이익과 우주적 혜택을 주기 위하여 수정된 것이다. 자비는 정의를 위반한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오히려, 지고한 정의가 요구하는 것을 이해심 있게 해석한 것이다. 왜냐면 이로써 진화하는 우주의 하위 수준의 영적 존재들과 물질 생명체들에게 공정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비란, 시공간에 있는 여러 부류의 지적 생명체들에게, 지혜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내려 보내주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가 베푸는 정의이다. 왜냐면 자비는, 신성한 지혜로  구성되어 있고, 우주 아버지와 그와 연관된 창조자들의 모든 것을 다 아는 마음과 통치자의 자유의지가 결심한 것이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사랑  (The Love of God )


  "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여러 일들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자세는 항상 신성한 애정이 일으키는 반응이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의 생명을 내려주실 정도로 그렇게 많이 사랑하신다. "그는 그의 태양을 악한 자에게나 선한 자에게나 떠오르게 하시고, 올바른 자에게나 그릇된 자에게도 비를 내려보내주신다." 

  하나님, 그의 아들들의 희생이나 또는 그 아래에 있는 생명체들의 중재 때문에,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게 되도록 추켜세워지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왜냐면 아버지 그 자신이 너희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 안에 신비롭고 존귀한 조율자가 함께 살아가도록 내려보낸 것은, 아버지로서의 애정에 따른 반응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 우주에 두루 있다; "누구라도 그에게 온다면, 그는 진리의 지식 안에 들게 함으로서 모든 인간이 구원받도록 할 것이다." 그는 "어느 누구도 멸망하여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창조자들은, 인간이 신성한 법률을 어리석게 어기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구원하려는 가장 선두에 서 계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본성적으로 아버지로서의 애정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는 그의 신성함의 한 부분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이로움을 위하여 우리를 벌하신다. 너희들의 불같이 뜨거운 시련 속에서도, "모든 우리의 고통 가운데서, 그는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으신다."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죄인에게 신성 스럽게 친절하다. 반역자들이 올바름으로 되돌아왔을 때, "우리의 하나님은 풍성히 용서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자비롭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너희들의 잘못을 지워버리는 자이며, 너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로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내려보내신 사랑의 모습을 보라,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림이 당연함을 말하는 것이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함에 대한 가장 뚜렷한 증거와 그를 사랑하여야 하는 가장 높은 이유는, 너와 함께 영원히 하나가 되는 그 시간을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인 너와 함께 살아가는 조율자 때문이다.  비록 네가 하나님을 찾아 나선다고 해서 찾지 못할지라도, 만약 너와 함께 살아가는 영의 안내에게 너를 맡긴다면, 너는 한 걸음 한 걸음, 한 인생 한 인생, 한 우주에서 다음 우주로, 시대에서 시대로, 끝내 네가 파라다이스에 계시는 우주 아버지 그분 앞에 설 때까지, 어김없이 안내될 것이다.

  인간 본성의 제한과 물질로 된 너희들 생명체의 약점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네하나님을 숭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 얼마나 합당하지 않은 일인가. 너희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그에게 도달하기에는 엄청난 (물리적 공간) 거리가 놓여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차이에 있어서도 이를 연결하여야 하는 커다란 간격이 존재한다. 그러나, 너와 파라다이스 하나님의 개적인 존재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영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접어두고, 하나님이 너 안에 살아 계신다는 확고한 사실을 깊이 생각하라.: 그는 이미 그 간격을 연결하는 그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그 자신을, 그의 영을, 네가 너의 영원한 우주의 생애를 추구함에 있어서, 너 안에 살면서 너와 함께 고생하려고 그를 내려보내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위대하면서도 동시에, 수준 낮은 생명체를 끌어올리려고 열정적인 봉사를 베푸는 그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숭배를 한다. 나는, 창조에 있어서 그리고 통제에 있어서 그렇게 힘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완전히 선하며, 사랑으로 친절함에 있어서 그렇게 뛰어나게 충실하여 우리를 항상 볼품없게 하는, 그를 자연스럽게 사랑을 한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위대하지 않고 그렇게 능력이 없더라도, 그가 선하고 자비로우신 한, 나는 그를 사랑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인정하여서 이기보다는 그의 성품 때문에 아버지를 더 많이 사랑한다.

  진화하는 공간의 우주에서 시간 속의 수많은 어려움과 부딪혀 아주 용감하게 투쟁하는 창조자 아들들과 그들의 예하 관리자들을 내가 바라볼 때, 나는이들 좀 낮은 우주의 통치자들에게 아주 크고 깊은 애정을 갖게 됨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결국, 여러 영역의 유한생명들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우주 아버지와 모든 다른 존재들을, 신적이든지 인간적인 존재이든지 간에, 사랑하고 있다. 왜냐면 우리는 이들 성품존재들이 우리를 진실로 사랑함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경험은 사랑을 받는 경험에 바로 직접적으로 따르는 반응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비록 그가 그의 지고성과 궁극성과 절대성의 성품 모두를 다 내어 던져버린다 해도, 나는 당연히 그를 계속하여 지극히 사랑할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뿐 아니라 영원한 우주의 끝없는 순환에 걸쳐서 우리를 따라다닌다. 너희들이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는 본성을 깊이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단지 단 하나 이성적이며 자연스러운 성품존재의 반응만이 있게 된다. 따라서 너희들은 너희들을 만든 조물주를 더욱 사랑할 것이며, 너희들은 이 땅에서 자녀들이 그의 부모에게 바치는 것과 꼭 같은 애정을 하나님에게 바치게 될 것이다; 왜냐면, 진정한 아버지, 참다운 아버지로서 그의 자녀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우주 아버지도 그가 창조한 아들과 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이로움을 영원히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지성적이며 멀리 앞을 내다보는 부모의 애정이다. 신성한 사랑은, 우주 아버지의 완전한 본성인 신성한 지혜와 다른 모든 특성이 함께 하나로 합쳐서 작용을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그러나 사랑이 하나님은 아니다. 신성한 사랑이 유한생명 존재들에게 가장 위대하게 잘 나타난 것은 생각 조율자를 내려보내심에서 알 수 있으며,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너희들에게 가장 잘 보여준 것은 그의 아들 마이클이 이 땅에 내려와 살면서 보여준 그의 이상적인 영적인 생애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각각의 영혼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지도록 한 것이 바로 함께 살아가는 조율자이다.  

  나는 여러 번, 인간의 용어인 사랑 이란 말을 구사하여 천국에 계신 아버지의 신성한 애정을 그의 우주 자녀들에게 표현하라는 강요를 받으면서 대단한 괴로움을 겪었다. 비록 이 말이 유한생명들 사이에서 존경과 헌신의 개념을 가장 높이 나타내는 말이겠지만, 그러나 우주의 생명체들에 대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그의 애정을 표현하는데 쓰는 그러한 말이, 또한 아주 비열하고 적절치 못한 많은 인간관계를 표현하는데 그렇게 자주 사용되는 말이라니! 내가 인간의 마음에게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신성한 애정의 참다운 성격과 아주 미묘하게 아름다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뛰어나고 꼭 들어맞는 여러 말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인간이 성품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왕국은 단순히 선의 왕국으로 되고 만다. 신성한 본성이 무한하게 하나로 통일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하나님이 그가 창조한 생명체들과 가지는 모든 개별적인 교류에 있어서도 가장 지배적인 특성이다. 



              6.  
하나님의 선()하심   (The Goodness of God )

   우리는 물리적 우주에서 신성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지적 세계에서 영원한 진리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은 오직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인 영적 세계에서만 찾아질 수 있다종교적 체험의 참된 진수를 통하여, 종교는 하나님의 선 안에서의 믿음이요 신의이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절대적일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철학적으로 지적이며 개성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은 역시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는 반드시 선하여야 한다. 인간은 위대한 하나님에게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러나 단지 선하신 하나님이어야만 믿으며 사랑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은 하나님의 성품의 한 부분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아들들의 개인적 종교적 체험에서만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종교는, 영적인 성질의 초-세상(-世上 superworld)이 인간 세상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요구를 인지하고 있으며, 또한 그에 대하여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진화를 하는 종교는 윤리적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다만 계시된 종교만이 진실되게 그리고 영적으로 도덕적이게 된다. 하나님 왕 같은 위엄의 도덕성으로 지배하는 신품존재인 것으로 이해하던 고대의 개념은, 예수에 의하여, 부모와 자식 관계의 친밀한 가족적인 도덕의 애정으로 어루만져 주는 단계로 향상되었으며유한생명의 경험에 있어서 이러한 단계보다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하나님의 풍족한 선함은 실수를 저지른 인간이 뉘우치도록 이끌어준다." "모든 선한 축복과 모든 온전한 축복은 빛이신 아버지로부터 내려온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는 인간 혼의 영원한 피난처이다." "천주 하나님은 자비스러우며 인자하시다. 그는 선과 진리에 있어서 오래 참으시며 그리고 풍요로우시다." "천주가 선하심을 입으로 맛보고 눈으로 보아라! 그를 믿는 자에게 축복이 있을지어다." "천주는 인자하시며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도다. 그는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로다." "그는 상처 난 마음을 고치시고 영혼의 상처를 감싸주시도다. 그는 인간에게 뛰어난 모든 혜택을 베푸는 분이로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왕이라고 이해하는 생각은, 비록 이 생각이 높은 도덕적 기준을 만들어 주었고집단마다 법을 따르는 민족이 되도록 만들어주었지만, 개인적인 신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위치를 시간 안에서 그리고 영원 안에서 존경받는 불안전한 슬픈 위치로 내버려지게 하였다. 히브리의 후기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인간의 개념은 예수의 생애에 의하여 초월적으로 밝게 조명되었다. 부모의 사랑에는 본래 자기 자신이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사랑을 한다. 그는 우주의 모든 성품존재에게 파라다이스의 아버지이다.

  올바름은 하나님이 우주의 도덕적 법칙의 근원임을 암시한다. 진리는 하나님을 한 분의 계시자로서, 스승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사랑은 애정을 주고 이를 갈망하며,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해심 있는 우정을 추구한다. 올바름은 신성한 생각일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랑이란 아버지의 마음가짐이다. 하나님의 올바름이 하늘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추정은, 신품의 본성이 서로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으리라고 미리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통일성과 자유의지 모두를 철학적으로 공격하게 되는, 속죄의 교리를 겨우 만들어 내도록 직접적으로 유도하게 되었다.

  그의 영이 땅에 있는 그의 자녀들과 함께 살도록 한, 애정이 넘치는 하늘 아버지는ㅡ하나는 정의로 또 하나는 자비로서ㅡ나누어진 성품존재가 아니며, 또한 아버지의 호의나 용서를 구하기 위한 중재자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신성한 올바름은 엄하게 응징하는 정의에 의하여 지배되지 않는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을 넘어서 그 위에 있다.

  하나님은 결코 격노하거나, 보복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지혜가 그의 사랑을 자주 억제하는 것은 사실이며, 반면 정의는 그의 자비가 거부되지 않도록 조정을 하여 준다. 올바름에 대한 그의 사랑은 죄에 대하여 그와 같은 크기로 미워함을 보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아버지는 모순된 성격의 성품존재가 아니며, 신성으로 통일된 하나로서 완전하게 계신다. 파라다이스 삼위일체하나님을 서로 돕는 영원한 개체들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통일을 이룬 하나이다.

  하나님은 죄인은 사랑하나, 죄는 미워한다.; 이러한 말은 철학적으로는 맞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초월적인 성품의 존재이며성품을 지닌 개체들만이 다른 성품을 지닌 개체를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 죄는 성품을 지닌 개체가 아니다. 하나님, 죄인이 성품을 지닌 실체(영원할 수 있는 잠재성에 있어서)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며, 그렇지만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별 성품적인 태도로서 상대하지 않는데, 왜냐면 죄는 영적인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죄는 성품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하나님은 그 존재만 단지 인지할 뿐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법은 죄를 파괴한다. 이러한 신성한 본성의 자세는, 유한생명 마음이 그와 함께 살아가는 영 조율자와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만약 죄인이 자기 자신을 죄와 끝내 하나가 된다면, 신성한 본성의 태도가 틀림없이 바뀌여져 버릴 것이다. 죄와 하나가 된 그러한 유한생명은 그때는 본성에 있어서 완전히 영이 아닌 것으로 될 것이며(따라서 성품적으로 실체가 아니며), 그리고 끝내 존재의 소멸을 겪게 될 것이다. -실체는, 심지어 생명체의 본성이 완전을 이루지 못한 것까지도, 점진적으로 실체가 되고 영적으로 성장하여야 하는 우주 안에서는 영원히 존재할 수가 없다.

  성품의 세상을 제대로 알게 되면,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는 성품을 지닌 한 분(loving person) 임을 알게 된다; 영적인 세상을 직접 대하게 되면, 그는 개별적인 성품으로 베푸는 사랑(personal love)임을 알게 된다; 종교적인 체험에서는 그가 둘 다임을 알게 된다. 사랑은 하나님이 뜻하는 의지가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사랑을 베풀고, 자비를 나타내고, 인내를 실현하고, 용서를 베푸는 우주적 기본적 성향인, 하나님의 신성한 자유의지의 밑 바탕이 된다.

   
          7. 
신성한 진리와 아름다움  (Divine Truth and Beauty )

  
   
모든 유한한 지식인과 생명체들의 이해는 상대적 이다. 비록 높은 출처로부터 얻은 정보와 지식이라 할지라도 오직 상대적으로 완전하며, 국지적으로 정확하고, 개인적으로 진실하다.
 
물리적 현상의 사실들은 대단히 일정하지만, 그러나 진리는 우주의 철학에 있어서 하나의 살아있는 유연한 성질의 요소이다. 진화하는 성품존재들은 그들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다만 부분적으로 현명하며, 상대적으로 진실하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이 미치는 만큼만 확실할 수 있다. 한 곳에서 명확히 전적으로 옳은 것일지라도 또 다른 창조의 부분에서는 다만 상대적인 진리일 수도 있다.
   
신성한 진리, 최종적인 진리는 한결같으며 보편적이다. 그러나, 여러 지역으로부터 오는 수많은 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영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지식의 완전함에 있어서 그리고 개인적 경험의 풍부성이나 그 경험의 길이와 범위에 대한 상대성 때문에 때때로 그 세부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로 다를 수 있다. 반면에, 첫 위대한 근원 중심의 법과 법칙, 생각과 자세는 영원히 제한없이 어디에서나 진실하다. 동시에, 모든 우주와 체제, 세계 그리고 창조된 지성체에 대한 이들 법과 생각의 적용이나 조정은 각각의 우주에서 활동하는 아들 창조자들의 계획과 능력에 일치하며또한 무한한 영과 모든 다른 연관된 천상의 성품존재들의 그 지역적 계획 및 그 진행과 조화를 이룬다

  
잘못된 물질주의 과학은 인간을 우주에서 그냥 밖으로 내팽개치도록 심판을 내릴 것이다. 그러한 부분적인 지식은 잠재적으로 악이다. 지식이란 선과 악 둘 모두로 구성되어 있다진리는 풍족하고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아름답다. 인간이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신성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사실에 대하여 한 방향의 관점에서만 집중함으로써 그 동떨어진 관점이 전체적인 진실인 것으로 주장하는 행위는추상으로 인한 허위로 잘못 인도되었을 때는, 가장 위험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현명한 철학자는 모든 우주 현상의 뒤 안에 있으며 그 현상 이전에 존재하는 창조적인 설계를 항상 추구할 것이다. 창조자의 생각은 예외 없이 창조적인 행위에 앞서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지성적인 인식은진리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인 일관성뿐만 아니라, 언제나 모습을 드러내는 진리의 영의 틀림이 없는 응답에 의하여더욱 확실하고 명확하게 진리의 아름다움, 그것의 영적인 성질을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이란 진리의 인식으로부터 일어난다. 왜냐면, 그것이 실행에 옮겨질 수 있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과 슬픔은 실수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왜냐면, 그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경험으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성한 진리는 그 영적인 향기 (spiritual flavor)로 가장 잘 알 수가 있다.                                   

    영원한 추구는 통일을 향하며신성한 응집을 향한다. 멀리 뻗어나간 광활한 물리적 우주는 파라다이스 섬으로 향하여 응집을 한다. 지성적인 우주는 하나님의 마음, 합동 활동자에게로 응집을 한다. 영적 우주는 영원한 아들의 성품존재에게로 응집을 한다. 그러나, 외따로 떨어진 시공간의 인간은 자기 안에 함께 생활하는 생각 조율자우주 아버지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에게로 응집을 한다.  인간의 조율자하나님의 한 조각으로써 끝임없이 신성한 통일을 추구한다. 조율자첫 근원 중심파라다이스 신품과 함께, 그 안에서 응집을 한다

 
지고한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은 실체의 발견이며 통합/결집(integration)이다. 영원한 진리 안에 있는 신성한 선을 안다는 것은, 그것은 궁극적인 아름다움이다. 심지어 인간 예술의 매력조차도 그것이 하나로 통일을 이룬 조화로움에 있다. 
 
히브리 종교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의 선함을 과학의 사실적인 진실과 예술의 뛰어난 아름다움과 함께 연관 짓지 못한 실수에 있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그리고 진리를 상대적으로 포함시키지 않거나 아름다움을 등한시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명하지 않은 과정을 똑같이 계속 추구한 종교 때문에, 어떤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을 심오한 추상으로부터 멀리 있게 하였고 따로 떨어져 있는 선의 개념과 분리시키는 성향의 증가를 초래하였다. 현대 종교의 지나치게 동떨어진 도덕성은 많은 20세기의 사람들에게 헌신성과 충성심을 갖지 못하게 하였으며, 만약 현대 종교가 그들의 도덕적 사명과 아울러 그들 자신을 다시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과학과 철학의 진리, 영적인 경험, 물질적 창조의 아름다움, 지적 예술의 매력, 순수한 인격 성취의 위대함 등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의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이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우주적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신성한 선이 크게 확장되고 잘 집약된 현대적 개념으로부터 새롭게 제시하는 삶의 철학을 감히 일으켜 세우려는, 멀리 내다보고 앞을 향하여 나아가는 영적 통찰력을 지닌 남성과 여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한 새롭고 올바른 도덕성의 비전은 인간 정신의 모든 좋은 것들을 끌어모아서, 인간의 혼에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향하여 도전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 아름다움, 선함은 신성한 실체이며, 그리고 인간이 영적 생활의 단계를 올라감에 따라서, 영원한 분(Eternal)이 지닌 이러한 지고한 성질들이,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서, 점점 더 협력하여 합쳐지면서 하나로 된다.                                      

   모든 진리는ㅡ물질적이든 철학적이든 또는 영적이든ㅡ아름답고 선하다. 물질적 예술이든 정신적 균형이든 모든 참된 아름다움은 진실되며 선하다. 모든 진정한 선함은 개인적 도덕성이든 사회적 평등이든 신성한 봉사이든 하나같이 진실되며 아름답다. 건강, 건전함, 행복은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선함이 인간 경험 속에 용해되어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의 집합이다. 이러한 원활한 삶의 여러 단계는 에너지체계, 생각체계 그리고 영의 체계의 통합으로부터 온다.
   
진리는 이치에 맞음이며, 아름다움은 끌어당김이며, 선함은 안정을 이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이 진실할 때는성품존재의 경험에 있어서 서로 도움을 주며, 그 결과는 지혜로 만들어지고 신의로 다듬어진 높은 수준의 사랑을 가져다준다. 모든 우주 교육의 참된 목표는 각 세상에 서로 떨어져 있는 어린아이들이 경험의 확장으로 얻는 더 큰 실체들을 가지고 더욱 서로 효율적으로 협조하도록 함에 있다. 실체는 인간 단계에서는 유한하며, 더 높고 신성한 단계에서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
유버사에 계시는 태초의 시절의 권한에 의하여 활동하고 있는 신성한 조언자가 제공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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